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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곤란한 선택의 문제가 한 가정에서 일어난다면 가족회의라도 열어 어떡하든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정된 일자리를 둘러싼 경쟁이 한 가족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서 벌어진다면 양상이 달라진다. 경쟁 상대가 내 부모, 내 자식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의 부모 세대, 또는 자녀 세대라면 내 일자리를 선선히 내놓으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익명성을 앞세워 세대 간에 처절한 일자리 다툼이 벌어지는 것이다. 예전엔 퇴직대상 직원에게 신입사원 추천권을 줌으로써 자연스럽게 부모의 일자리를 자녀에게 넘겨주는 아름다운 풍속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미풍양속은 사라진 지 오래다. 지금은 세대를 가리지 않고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전방위로 벌어지고 있다.
이 판에 아버지 세대인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의 은퇴 시점이 닥치면서 중고령 인구의 고용 불안 문제가 불거졌다. 노동부는 베이비붐 세대의 고용 불안을 막기 위해서는 정년 연장과 임금피크제의 도입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자 기획재정부는 “정년 연장은 청년실업의 해소와 상충되므로 일률적인 정년 연장 대신 능력에 따른 선별적인 정년 연장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흡사 노동부와 재정부가 세대 간 일자리 다툼의 대리전을 벌이는 형국이다.
현재로선 세대 간 일자리 경쟁에서 아버지 세대가 일단 우위를 보이는 것 같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는 50대와 20대의 고용률이 다같이 위기 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금융위기 이후에는 50대의 고용률이 3년 만에 위기 전 수준을 넘어선 반면, 20대는 그렇지 못했다. 한국경제신문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27개 공기업의 신규 채용 현황을 조사한 보도에 따르면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이후 신규 채용이 뚜렷하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아버지 세대의 일자리를 지키느라 아들 세대의 일자리가 날아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철선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임금피크제 등으로 고령자의 실질임금이 하락하면 평균 노동비용이 감소해 신규 일자리를 늘릴 여력이 생긴다”면서 실제로 2005~2007년 중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91개 기업에서 30세 미만 직원의 신규 채용을 평균 20.3명 늘렸다는 통계를 근거로 들었다. 결국 부모 세대의 정년 연장이 곧바로 청년실업을 악화시키는지는 여전히 논란이다.
이런 와중에도 세대 간 충돌과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한쪽에선 베이비부머에 대한 고용대책위원회가 정년 연장을 밀어붙이는 반면, 다른 한쪽에선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아르바이트 청년들이 청년노조(청년 유니언)를 결성해 정년 연장을 저지할 태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부도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일자리를 둘러싼 세대 간 충돌을 막기 위한 사회적 합의 도출에 나섰다. 그러나 세대 간 갈등이 이런 식의 사회적 합의로 풀릴 것 같지는 않다. 합의의 주체가 각 세대를 대변할 만한 대표성을 가졌는지도 의문이고, 합의한다고 해서 일자리 부족이라는 근본적 원인이 해소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세대 간 일자리 충돌은 단순히 일자리 나누기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성장 잠재력과 인구 구조가 복합적으로 녹아 있는 문제다. 정년 연장도 이런 시각에서 보면 세대 간에 다툴 일이 아니다. 단기적으론 한정된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구도에서 벗어나 전체 일자리를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장기적으론 인구 구성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파국적인 세대 간 충돌을 피할 길이 없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