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자료

[스크랩] 스크랩] 미수다의 신인 아비가일을 통해 알아본 파라과이의 비장한 역사

https://dia-na.tistory.com 2010. 7. 1. 10:11

스크랩] 미수다의 신인 아비가일을 통해 알아본 파라과이의 비장한 역사

http://cafe.daum.net/ccw20/DoLV/1748
여러분은 파라과이 하면 무엇이 생각나시나요? 아마 대부분 파라과이의 축구영웅 칠라베르트가 생각나지 않을까요? 아니면 열대의 비키니 미녀들? 아마 이제부터 저같은 미녀들의 수다 팬들은 새롭게 등장한 신성 아비가일양이 떠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김에 이번에 아비가일양의 조국 파라과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파라과이 역사의 특징

파라과이의 역사는 강의 위치, 주변국과의 관계에 따른 국토위치, 자원, 대조적인 두개지역의 구분등 지리적인 특성만큼 파란만장하며 토초화된 비참한 전쟁의 결과를 딛고 일어서는 역사의 되풀이와 오랜 세월 동안의 고립과 경시로 인한 부진성등이 특징을 이루고 있다.

 

 이쯤에서 파라과이 지도를 펼쳐놓고....



과라니족 역사

비옥하고 수림이 풍성한 파라과이 동부지방은 남미대륙의 남동부에서 살아왔던 과라니어를 말하는 인디언중 수개 종족이 살아왔다. 이들은 반 유랑종족으로 남미의 다른 인디언 족들과 마찬가지로 바퀴를 몰랐으며, 쟁기, 짐을 끄는 우마, 철등을 알지 못하였다. 이들은 동물뼈, 뿔, 나무등을 연장이나 무기로 사용하였으며 사냥과 낚시로 음식물을 주로 해결하였으나 계절에 따라 장소를 옮기면서 옥수수나 만디오까등을 경작하여 식량으로 쓰기도 하였다. 과라니족은 주로 숲에서 생활하였으며 과라니어로 낙원을 가르키는 YBAGA(으바가)라는 말은 "과실나무가 많은 곳"을 뜻한다. 이들이 사용한 과라니어는 주로 의성어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도 이 특성은 살아있어 숲속에서 들리는 듯한 의성어가 과라니어에서 많이 발견된다. 이들이 가졌던 종교관과 종교적인 신화로 주변의 풍성한 동식물과 함께 조화있게 살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들은 약 1,100가지 식물에 이름을 붙였으며 각 식물의 의학적인 특징을 알고 있어 병치료에 사용하였다고 한다.

 

자기 키를 훨씬 넘는 장궁을 장비한 과라니족 전사

 

종교관으로서 이들의 주신에 "뚜바"가 있는데 신성하고 형체가 없는 영으로서 온 우주에 생기를 불어넣은 신으로 절대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 과라니 족들의 신들중 악신은 단하나 "아냐"가 있으며 나머지는 모두 자연을 보호하는 신이다. "뚜바"가 영이었다는 것과 "뚜바"의 행동은 곧 지상에서의 삶이 종말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기독교 종교관과 유사한 점이 많아 카톨릭교 종교관을 가진 선교사들이 카톨릭교를 전파할때 큰 마찰없이 쉽게 화합된 것도 이때문이다.

 

"과라니"라는 단어는 "전사"를 나타내는 말로서 지금 파라과이인들과 마찬가지로 옛날의 과라니족도 우호적이며 공손한 성격이나 일단 전쟁에서는 강렬하고 물러설 줄 모르는 종족이었다. 과라니족의 일부는 파라과이강을 건너 챠코지방의 과이쿠루스종족과 싸우기도 하였으며 백인들이 오기 이전부터 잉카제국의 부를 탐내어 공격하기도 하였다. 과라니족의 문화가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는 역시 이들이 가졌던 풍부한 식물에 대한 지식과 약초 사용법으로 현대에 들어와 과학적인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또한 과라니족들의 언어인 과라니어는 미주대륙 토속 인디언들의 언어중 가장 발달한 언어로서 지금도 파라과이의 공용어중의 하나로 쓰이고 있다. 현대에 들어와 스페인어의 알파벳을 이용하여 과라니어를 표기함으로서 많은 발전을 보이고 있다. 한편, 달력은 근 한달에 1번씩 차고 기우는 달을 이용한 태음력을 사용하였다.



신대륙발견과 정복의 역사-파라과이의 발견

콜롬부스의 미대륙발견(1914년)이후로 활발해진 항해로 지구상의 발견시대가 시작되면서 남미대륙은 스페인과 포르투칼의 정복자들에 의하여 조금씩 정복당하게 된다. 유럽인중 "라쁠라따"강을 최초로 탐험하기 위하여 올라왔던 사람은 스페인 훼르난디도왕의 함대를 이끌고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가는 길목을 찾던 "후안 디아스 데 솔리스"였으나 라쁠라따강 입구인 현재의 우루과이땅에서 인디언에 의하여 사망한다(1516년).

 후안 디아즈 드 솔리스

 

 

그리고 이 배에 타고 있던 사람중 11명이 목숨을 건져 브라질의 산타카탈리나에 도착하여 과라니족의 영접을 받아 함께 생활하게 된다. 이중 한사람인 "알레호 가르시아"는 인디언들과 8년간 생활을 하면서 과라니어를 익히고 서쪽으로 가면 금과 은이 많은 땅이 있다는 소식을 듣게된다. 이리하여 그는 부하들과 함께 과라니족 인디언을 이끌고 금.은을 찾아나서면서 파라나강을 건너 오늘의 파라과이 땅을 밟게되어 파라과이를 발견한 최초의 유럽인이 된다. 그는 파라과이강까지 건너 잉카제국을 공격하여 많은 금은보화를 갖고 오다가 오늘날 파라과이의 산뻬드로 지방에서 사망하였다고 한다(1525). 한편 이와는 별도로 "세바스티안 가보또"는 수로로 라쁠라따강을 거슬러 올라와 파라나강으로 들어가 "상투스 스피리투스"요새를 구축함으로서 수로로는 최초로 파라과이를 발견하게 된다(1527).



스페인 식민지 시대

"파라과이"는 1525년 포루투갈인 알레호 가르시아에 의하여 발견되었으나 본격적인 개척은 1537년 스페인인 후안 데 살라사르에 의해 시작, 스페인 식민지화 함. 후안 데 살라사르는 파라과이 강변 교통 중심지를 "NUESTRA SENORA DE ASUNCION"(현재의 수도)라고 명명하고 이 지역 식민지화의 근거지로 삼았음.  

 

 

 

독     립

파라과이는 1811. 5. 15.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달성, 5인의 집정위원에 의해 통치되었으나, 1814년에 집권한 프란시아는 1840년 사망할 때까지 27년간 대외 관계를 기피하고 학자와 종교를 강압하는 등 독재정치와 쇄국 정치를 실시함.  1844년 신헌법이 제정되고 초대 대통령으로 카를로스 안토니오 로페스가 선출되어 1862년까지 19년간 통치하면서 국력을 크게 신장시킴.  

 

 



3국 전쟁

카를로스 안토니오 로페스 사후 그의 아들 프란시스코 솔라노 로페스가 대통령에 취임, 부친의 정책을 계승, 국력증강에 주력하자 이로 인해 인근 브라질, 아르헨티나와 국경문제를 유발, 관계가 악화되었으며 직접적인 도화선인 우루과이 내전을 놓고 파라과이는 정부를, 브라질, 아르헨티나는 반군세력을 지지하게 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파라과이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3개국을 상대로 1864년 3국 전쟁을 강행함.

 

파라과이와 브라질의 전쟁

 

1870년에 끝난 3국 전쟁에서 파라과이는 총인구의 60%를 상실(50만명 사망, 남자의 90%) 하였으며 국력은 완전히 고갈됨. 그후 1870. 11 신헌법이 제정되고 1887년에는 홍당(Partido Colorado)과 자유당(Partido Liberal)의 양대정당의 문제로 정정이 불안정하여 1916년 까지 22인의 대통령이 경질됨.(1880-1904 : 홍당집권, 1904-1940 : 자유당 집권)

 


차코 (CHACO) 전쟁

볼리비아 군인들의 Chaco지역 침범 주둔으로 시작된 1932-35년간 볼리비아와의 국경분쟁으로 "Chaco" 전쟁을 치루었으나  미국 및 중남미제국의 조정으로 휴전이 성립되었음. 이 전쟁으로 서부지역 영토를 확보함. 제 2차 대전중 대통령에 취임한 Morinigo 장군은 미국으로부터 다액의 차관을 얻어 도로, 공공건설등 국내 분야에 치중하였으나 1947년 내란 유발로 홍당이 집권함으로써 Morinigo 대통령은 사임하고 내란은 계속되어 1954년까지 6명의 대통령이 바뀌었음.

 

 전진하는 볼리비아군

 


맺으며....


파라과이는 1525년 에스파냐의 A.가르시아가 과라니족의 거주지이었던 파라과이에 맨 처음 발을 들여놓은 이후 1536∼56년 무렵에는 에스파냐의 식민지화 작업이 본격화되었다. 원주민 과라니족은 마테차(茶) 재배를 비롯한 농장이나 목장에서 혹사당하였다. 예수회는 이곳에 대신정국가(大神政國家)를 건설하고 20여 만의 과라니족을 1776년까지 착취하였다. 이와 같은 예수회의 특권은 식민지 출생 에스파냐인들의 불만을 불러일으켜 1719∼35년에는 ‘코무네로스의 혁명’으로 이어졌고 1811년 5월 P.J.카발레로와 F.예그로스가 이끄는 민병대가 에스파냐 총독을 축출함으로써 독립을 획득하였다.

 

 
독립 후 1813∼40년에는 프란시아를 중심으로 강력한 독재체제를 유지하면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부터의 경제적 의존에서 탈피하기 위하여 쇄국정책을 실시하는 한편, 경제의 재편성을 꾀하였다. 이에 따라 농지개혁을 단행, 농민에게 토지를 분배하고 공립학교를 창설하여 문맹퇴치에 노력하였다. 1841∼62년의 C.A.로페스에 의한 독재정치 아래에서는 개방정책이 취해져 외국자본에 의한 국력의 증강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1862년 대통령이 된 F.S.로페스는 영토확장의 야망으로 무모한 전쟁을 일으켰다. 1864∼69년의 6년 간에 걸친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와의 3국동맹 전쟁에서는 전인구의 1/2, 남자의 9/10를 상실하였으며, 전쟁이 끝난 뒤 살아남은 남자는 2만 8,000명에 불과하였다. 이 결과 파라과이 인구는 1864년의 130만에서 1970년에는 22만으로 줄어들었다.

그 후 영국자본의 진출이 현저해지고 국내에서는 친(親)아르헨티나파(派)와 친브라질파 사이에 정쟁(政爭)이 되풀이 되었다. 3국동맹전쟁 후 파라과이는 차코 지방의 개척에 착수하였으나 이것은 볼리비아의 남진정책과의 충돌을 빚게 되었다. 1932∼35년의 그란(大)차코전쟁에서는 영국 석유자본의 원조를 얻어, 미국자본이 지지하는 볼리비아와 전쟁이 벌어졌다. 이 전쟁에서 파라과이는 5만 명의 인명을 희생하고 차코 지방의 3/4을 획득하였다.

 

 지금은 전대통령이 된 곤잘레스


그 후 여러 차례 쿠데타와 역(逆)쿠데타가 잇따라 발생,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었다. 1954년에는 A.스트로에스네르 장군이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대통령에 취임한 뒤 7차례의 선거에서 계속 당선되어 8차례나 대통령직에 올라 장기집권했다. 그러나 1989년 2월 자신의 측근이자 제1군사령관인 A.로드리게스 장군이 민주화를 내걸고 일으킨 쿠데타로 실각, 브라질로 망명하였고 로드리게스 장군은 1989년 5월 총선을 실시하여 대통령에 당선되어 1993년 8월 문민정부에 정권을 이양하였다. 문민정부는 군부의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1998년 5월에 실시된 선거에서 라울 쿠바스 그라우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 되었으나, 오비에도 전 육군 사령관의 석방문제로 여야의 대치정국이 계속 되어 오던 중 1999년 3월 아르가나 부통령의 암살 사건에 따른 민중 봉기로 쿠바스 대통령이 사임하였다. 루이스 곤잘레스 마치 상원의장이 1999년 3월 대통령직을 승계하였다.

 

* 대개의 중남미국가들이 그렇듯이 파라과이 역시 험난하고 고단한 역사의 연속이군요. 하지만 지금의 파라과이는 그나마 남미에서 살만한(?) 국가로 알려져 있죠. 아비가일양이 한국에 긍정적인 파라과이의 이미지를 남기길 기대하면서 이만 줄입니다.

 

그럼 여기까지 고생하신(?)분들을 위한 보너스~~!!!

 

 

 

아비가일의 프로필

 

이    름 : 알데레테 아비가일 (Alderete Abigail)
국    적 : 파라과이
직    업 : 학생
취미/ 특기 : 춤(댄스스포츠)

 


한국 거주기간 : 2년 2개월
왜 한국에 오게 되었나? : 대학교 입학하려고 왔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한국 연예인 : 비, 김종민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 제육덮밥, 닭지그리
평소 즐겨보는 한국 TV프로그램은? 미녀들의수다, 개그 콘서트

 


한국에서 가장 즐겨가는 곳은?/ 이유는? 동호회(재밌고, 춤도 추고 사람들 재밌어요)
한국에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곳은? :

                                              한국 민속촌(?)(경기도에있는) 공원들^^. 한국 전통 집들 너무 이뻐요
한국에서의 경험 중 가장 재미있었던 경험은? : 친구들하고 Caribean Bay에 놀러갔었을 때.
                                                               그리고 동호회에 파티할때
한국의 친구들에게 한국을 소개한다면 뭐라고 하겠는가?
                                            안뇽^^ 파라과이에서 온 아비예용!! 만나서 반갑고 치나게 지내영♡

 

 

참 뭐랄까? 좀 신비한 분위기의 그녀, 한국에서 행복하고 좋은 기억만 남기길 바랍니다.

 

그럼 정말 이만 끝!

 

 참 부러운 친구들 ㅠ_ㅜ

출처 :Cigarette & Alcohol (⑮ ) 원문보기 글쓴이 : 祈遇 기우
출처 : 신령한
글쓴이 : kbk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