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악마에게 찾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https://dia-na.tistory.com 2011. 8. 10. 21:51

 

 

 

미하일 부르벨  (1856 옴스크--1910 생 뻬쩨르부르크 ) 의 작품   '앉아 있는 악마' 114*211cm

 

모스크바 트레챠코프 미술관

 

 

 

이 그림을 엽서로 처음 본 것은 유학 첫 해 겨울이었다.

 

그림을 보자마자 잠깐 움찔 했던 기억이 뚜렷하다.

 

Demon Assis  앉아있는 악마라니 이 제목은 도대체 뭔가.

 

알려지지 않은 러시아 화가 이기도 했지만, 도대체 어느시대에 그려진 건지, 또 왜 이런 이름을 달고 있는지

궁금해진 것은 그 다음,

처음에는  그림 속 등장인물의 눈을 한참동안 들여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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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살에 자기를 질투한 젊은 귀족들에 둘러싸여 권총 결투를 하다 사망했던 러시아의 시인 레르몬토프가 믿어지지 않지만, 15살 때 부터 구상하고 수정해서 출간했던 서사시 '악마'는 원래 천사였다가 날개를 잃고 (신을 배반하고) 지상으로 축출된 데몬의 이야기이다.

 

 

타마라 라는 아름다운 공주가 있었다.

지상에 떠돌던 데몬은 그녀에게 반하고, 그녀 곁에 있고 싶어하고, 그녀의 마음을 얻고 싶어했다.

그가 데몬임을 알았던 그녀의 두려움과 회피,

그리고 데몬 자신도 알고 있었던  파국에도 불구하고

모든 비극이 그렇듯 둘은 사랑하게 되고,

어떤 희생의 따르더라도 데몬을 사랑하겠다던 타마라와 첫날밤을 보낸

다음날 아침

데몬은 그녀의 죽음을 본다.

 

손가락 사이로 물이 쏟아지듯 그녀의 영혼이라도 자기가 지켜주고 싶었으나,

살아있는 순간이 아닌 죽음이후의 영혼은 신의 것

데몬이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신의 하늘로 타마라의 영혼은 올라가고

데몬은 지상에 남겨졌다.

 

 

부르벨의 그림은 홀로 있는 데몬의 눈에 통곡이나 분노가 아니라

공허하게 생명이 꺼져가는 것 같은 묘사를 해놓았다.

너무 깊어서 감당이 안되는 슬픔.

 

돌덩어리를 닮은  사람의 몸,

노을을 닮은 사람의 눈,

 

이제 끝나지 않을 밤이 올 데몬을 위한 그림.

 

 

이리도 모질게 구는 신과

악마로 강등되어서도 굽히지 않는 그 아래의 존재

 

19세기는 유달리 영웅들이 필요했던 시기였다. 

수많은 영웅상이 그려졌었다.

레르몬토프의 데몬은  인간을 뛰어넘는 하나의 영웅이었겠지만,

부르벨의 데몬은  굴복하진 않았으나, 끝내 부러지고 죽어가는 모습이다.

짜르의 폭정에 대항하던 혁명가들이 드디어 등장하는 제정 러시아의 분위기에서,  

난폭한 신 앞에 선 인간을 표현했던 데몬은

 

그 절망 때문에 인간적이었다.

 

 

 

 

 

악마의 머리  1890-1891 23*36  cm Musee d'art russe Kiev

 

 

 

 

 

화가 자신도

인간이기에 가진 나약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항하는 도전 속에 끊임없이 스스로를 괴롭히는 사람이었다.

 

 

 

 

 

Le Demon Volant  1899  미완성  138,5 *430,5 cm  Musee russe  St-Peterbourg

 

꼭 농담같은 이야기지만 이 '날고 있는 악마'의 그림을 전시하던 때,

전시장이 개장하는 그 순간까지도

데몬의 눈을 고치고 또 덧칠하다가 부르벨이 친구들에게 끌려나간 곳은  정신병원.

 

1910년  그의 사망 원인도 신경쇠약과 정신 분열 탓에 왔던 건강문제였었다.

 

지독스러운 집착.

 

다시 지우고 또다시 그리던 악마에 집중했던 그가  찾고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4m 가 넘는다는 이 대형 그림은

한개의 벽을 채우고 벽 뿐만 아니라 방 전체를 암울함으로 가득채우고 있다고들 한다.

 

 

자화상

 

 

 

 

 

 

백조 공주  1900  142,5*93,5 cm  모스크바 트레차코프 미술관

 

 

자신의 부인을 모델로 그린 백조공주는

비슷한 눈빛 이면서도 젖어있는 우수를 표현하는 걸로 충분한, 우아함 가득한 그림이었으나,

그가 그렇게 파들어갔던 그림은 이런 소품과는 뭔가 다른 게 있었다.

 

 

좀 더 추상적이거나,

많은 부분 중동에서 영향받은  장식적이고 단순화된 문양, 색감 등이 나타나는 다른 작품에서도 

작가의 개성은 잘 나타난다.

 

하지만, 이 데몬 시리즈에서 작가가 찾고 싶었던 그 뭔가, 그리고 끝내 구현해내지 못하고 정신병에 빠지게 한 그 뭔가는 사람 속에 뭔가 깊은 감정, 그것이 슬픔이건 절망이건 사람이 겪어야 하는 지독하게 인간적인 모습이 아니었을까..

 

 

 

 

 

2006년 올세 박물관 (Musee d'Orsay)에서

[19세기 후반 러시아 작가들]--이라는 제목의

전혀 화제도 안되고, 흥행도 그럭저럭이었던 전시회에

부르벨의 '앉아있는 악마'도 오게 되었다.

 

그리고 그 그림 앞에서,

사진을 찍지 못하는 특별 전시회인 탓에

그저 눈으로만 담아야 했던

그렇게 대면하고 싶었던 데몬을 앞에 두게 되었다.

유독 이 그림 앞에서 공기도 느리게 움직이는 거 같은 느낌이랄까. 무거움이 숨을 막는 거 같은 기분이었더랬다.

 

 

 

그림은 설명이 들어가기 참으로 어려운 개인적인 부분이 많다.

때문에 항상 해설이나 의견은 자유롭고 정답이 없게 마련.

다만, 그림또한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이야기일 수 밖에 없다.

 

부를때 마다 가슴이 찢어지고 눈물이 나는 이름, 내 어머니 러시아.

라고 했었던 러시아의 수많은 예술가들.

 

그리고 러시아 뿐 아니라 어디서든, '인간'을 표현해내고 싶었던 수많은 이야기들을

찾아가기 위해,

그의 이야기를 '보여주며' 그 자리에 있던 데몬을 떠올린다.

 

 

화가 세르게이 수다이킨은 1906년 파리 가을 살롱을 이렇게 기억한다.

 

그날, 피카소는 사람이 거의 없던 그곳, 전혀 서방에 알려져 있지 않았던 브루벨이 그린 그림 한점을 앞에두고 몇 시간을 떠나지 않았다. 딱 이 그림 하나로 프랑스에 오게 된 부르벨과, 젊지만 이미 전통의 파괴자로 명성을 떨지던 피카소는 그렇게 러시아와 서방의 대화라는 듯 극적인 모습으로 만나게 되었다.

 

                                                                ------------Parkstone Aurora 의 브루벨 전기 중...

출처 : Thesis personnelle
글쓴이 : 현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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