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자크 루이 다비드의 <소크라테스의 죽음>

https://dia-na.tistory.com 2011. 9. 28. 23:27

 

자크 루이 다비드의 <소크라테스의 죽음>

 

 

 

 

 

10

 

1785년 살롱전에서 인기를 한 몸에 받은 후부터 다비드에게 작품을 의뢰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의뢰를 받은 작품 가운데 1787년에 그린 <소크라테스의 죽음>10이 있다. 이 작품은 부자 샤를-미셸 트루다인이 의뢰한 것이다. 트루다인은 동생 샤를-루이와 함께 파리에 있는 자신들의 화려한 타운하우스에서 정기적으로 전시회를 열곤 했으며 사람들은 이곳을 ‘트루다인 소사이어티 ’라고 불렀다. 다비드도 이 모임에 종종 참석했으며 이곳에서 진보적 사고를 가진 시인 앙드레 마리 드 체니에를 만났다.

 

 

 

86

 

이 그림은 기원전 399년 신성불경죄와 아테네 청년들을 선동한 죄로 기소되어 사형에 처해진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 최후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의 순간까지도 평소와 다름없이 제자들과 철학적 대화를 했다. 이런 소크라테스는 계몽주의자들에게 가장 모범이 되는 위인으로 받들어졌다. 다비드가 이 작품을 그릴 때 체니에가 소크라테스의 제스처에 관해 많은 조언을 해주었다.

다비드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1787년 살롱전에 출품했는데 페이롱 역시 동일한 주제의 그림86을 출품하여 사람들의 눈에는 두 사람이 경쟁이라도 하는 듯 보였다. 페이롱은 루이 16세의 의뢰로 그린 것이다. 페이롱이 소크라테스를 그리고 있다는 사실을 다비드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보다 더 잘 그릴 수 있다는 자심감으로 동일한 주제를 선택했다. 다비드의 작품은 페이롱의 것에 비해 더욱 더 강렬한 느낌을 주고 명료하며 극적이었다. 대중과 평론가 모두 입을 모아 다비드의 작품이 페이롱의 것보다 우수하다고 칭찬했다. 이로써 페이롱은 회화에 있어서 더이상 다비드의 상대가 되지 못했고 다비드 홀로 파리 화단의 독보적 존재임이 분명해졌다.

살롱전을 관전한 영국 언론인 존 보이델은 다비드의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뛰어난 걸작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보이델은 열흘 동안이나 이 작품을 감상한 결과 고대 그리스 전성기였던 페리클레스 시대의 소크라테스에게 경의를 표하는 듯한 작품으로 샅샅이 살펴봐도 결함이라고는 발견되지 않는다고 적었다. 프랑스 주재 미국 대사 토마스 제퍼슨 역시 살롱전을 관전한 후 다비드의 소크라테스가 가장 탁월한 작품이라는 소감을 밝혔다. 트루다인은 이 작품에 대단히 만족해하면서 원래 계약한 6천 리브라보다 훨씬 많은 1만 리브라를 선뜻 지불했다. 이 시기에 다비드의 제자 드루아가 과로와 천연두로 1788년 2월 로마에서 세상을 떠났다.

출처 : 광우의 문화읽기
글쓴이 : 김광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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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 역사 7단원 중 그리스문명을 준비를 하다가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묘사한 그림이 떠올라 검색해서 스크랩했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명으로 법정에 섰을 무렵의 아네테는

스파르타와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참패로 끝나 아테네가 함대가 파괴되고 가난한 지방에는 전염병이 창궐하던 시기였다.

그의 재판정에 참여한 배심원의 상당수는 수당을 받기 위해 나온 노인과 상이군인이 포함되어 있었다.

소크라테스 평상시 언행은 그들에게 빵보다 먼 얘기였기에 편견에 가득찬 판결에 손을 쉬이 들 수 있는 부류였다.

소크라테스는 500명의 배심원 중 1차에서 280명, 최종판결에서 360명의 유죄판결을 받고 독배를 마셨다.

 

그가 남긴 마지막 유언은

"여보게 크리톤,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한마리를 빚졌네. 자네가 대신 갚아주게." 였다.

 

아테네에서 아스클레피오스는 약과 의술의 신으로 아테네 사람들은 병이 나면 아스클레피오스에게 기도를 드렸고,

낫게 되면 닭 한마리를 감사의 제물로 바치는 풍습이 있었다.

생의 마지막 순간 독배를 마셨던 소크라테스는

독배로 인해 이 생의 순간을 순조롭게 마치게 되어 감사하다는 풍자를 이렇게 빗댄 것이라고 한다.

 

천재는 범인의 조소위에 있다.

그래서 그들은 늘 고독하고 늘 힘겹게 살아간다.

천재에게만 보이는 혜안이 범인들에게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