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러진 화살> - 상식을 꼴통이라 부르는 사회를 향한 하이킥!

https://dia-na.tistory.com 2012. 1. 22. 02:17

설 연휴를 앞두고 한밤중에 극장나들이를 했다.

영화 <부러진 화살>

 

 

 

 

제작비 5억원의 저예산 영화라 안성기를 비롯한 박원상, 나영희, 김지호등

주연급 배우들이 노개런티로 참여했다고 한다.

(영화는 입소문과 SNS의 위력에 힘입어 손익분기점은 이미 훨씬 넘었다고 한다.)

 

나영희는 김경호교수의 부인으로 나온다.

남편의 결백을 믿고 지지하며 차갑고 강단있는 모습으로 나온다.

(나영희의 카리스마나 내공이 상당한데도 그가 가진 무게가 제대로 평가받는 적은 많이 않았던 것 같아 늘 아쉽다.)

 

영화는 오래전부터 우리사회에서 '무전유죄, 유전무죄'가 상식이 되어버린 사법부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또한 제밥그릇만 챙기며 근시안적 삶을 살아가느라

자신을 억압하는 거대한 유리천정을 보지 못하는 소시민에 대한 채찍이기도 하다.

 

 

부러진 화살’은 2007년 김명호 전 성균관대 수학과 교수가 서울고법 민사2부 재판장이었던 박홍우 부장판사를 상대로

이른바 ‘석궁 테러’를 일으킨 사건에 대한 재판과정을 다룬 영화다.

김 전 교수는 대학 본고사 수학문제의 오류를 주장한 뒤 1996년 교수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하자 소송을 냈지만

법원에서 1,2심 모두 패소하자 박 판사를 찾아가 석궁을 발사했다.

이에 김 전 교수는 2008년 6월 대법원에서 징역 4년이라는 원심 판결이 확정돼 복역 후 지난해 1월23일 만기 출소했다.

‘부러진 화살’은 이런 실화를 바탕으로 재현됐다.

개봉이후 실화와 영화 내용의 일치 여부가 관심사로 부상했다. ‘

부러진 화살’의 정지영 감독은 “영화는 실화 90%에 허구 10%가 가미됐다”고 밝힌 바 있다

김명호 전 교수를 변론했던 박훈 변호사는 “영화와 실제 변론과정이 100% 일치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석궁 테러 사건의 쟁점은

증거물로 지목된 부러진 화살의 제출 여부,

박홍우 판사의 와이셔츠에 묻은 혈흔의 진위다.

김 전 교수 측은 재판 과정에서 박 판사가 배에 맞았다는 ‘부러진 화살’이 증거물로 제출되지 않았고,

박 판사의 와이셔츠에는 혈흔이 없었지만 조끼와 내의 사이에 혈흔이 묻었다는 점을 들어 증거조작을 의심하고 있다. 

-세계일보 2012.01.21-

 

영화에서 인물의 이름은 실명과 유사한 가명을 쓴다.

김경호(김명호교수)는 소법전을 들춰가며 검사와 판사의 위선을 파헤친다.

그로인해 감옥에서 인간적 모멸을 느낄만큼 테러와 성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

 

석궁테러로 인해 외상을 입었다는 박홍우 부장판사는 박봉주란 가명으로 나온다.

김경호는 재판결과에 불만을 품고 석궁을 들고 박봉주 집앞에서 기다렸다가

위협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고의로 석궁을 쏘지 않았고

몸싸움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발사된 것이므로 자신은 무죄라고 주장한다.

 

그의 변호를 맡은 박준변호사는 석궁연습장에 가서 실험을 한다.

석궁이 제대로 장전되어 발사되어 사람에게 맞았을 경우 깊은 상처를 낸다고 한다.(15cm? 20cm? 기억이 가물)

그러나 박봉주에게 나타난 상처는 2cm.

그것도 상처를 맨 처음 본 119 구급대원이 기록에는 0.5cm로 기록되어 있었다.

석궁이 정조준되지 않았을 경우엔 어떻게 될까?

아예 발사조차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박봉주가 입은 상처는 어떻게 입은 것인가?

또한 그가 내민 증거자료를 보면

메리야스와 조끼에는 혈흔이 발견되는데,

와이셔츠에는 혈흔이 없다.

설상가상으로 메리야스와 조끼에 묻은 혈흔이 박봉주 것인지를 인해 달라는 진정을

재판부는 끝까지 묵살해버린다.

결정적으로 박봉주가 맞고 부러졌다는 화살은 어디에도 없다.

 

재판에 내놓은 증거자료가 이토록 엉성한데도

판사는 끝까지 피고인의 주장을 묵살해버린다.

(문성근은 권위와 아집으로 똘똘 뭉친 판사역할을 얄미울정도로 완벽하게 빙의되어 표현했다.)

 

내용만을 보면 영화를 보는 내내 분노로 인해 화가 치밀법도 하지만,

이상하게 통쾌함과 웃음을 짓게 한다.

 

'꼴통'이란 별명이 마땅하다 싶으리만큼

집요하게 원칙을 물고 늘어지며 하고 싶은 말은 모조리 내쏟는 김경호를 보며

대리 만족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어느기사에서는 말한다.

"쫄지마 시바!"라는 말을

 그는 이미 7년전에 외쳤던 것이다.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에 화가 치밀면서도

극장을 나서면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이유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이처럼 위트가 넘치기 때문이다.

 

재소자의 인권조항을 나열하며 자신의 인권을 끝까지 지켜내는

정통 보수 김경호의 쫄지 않는 여유가 우리에게 힘을 주기 때문이다.

(나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참으로 마음에 든다.

어렵고 힘든 순간일수록 잃지 말아야 할 덕목은 바로 유머다!)

 

 

그리고 현실로 돌아와

배우라는 위치에서 튀지 않게 사회의 모순을 스크린을 통해 표현하는 안성기라는 영화배우의

영화 선정 기준을 보며 과연 국민배우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영화의 암흑기에 표현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말을 하는 것,

관객으로부터 철저하게 무시당한 영화에 다시 공감과 활력을 되찾을 것,

그리고 망설임 없이 배우라는 직업에 인생을 걸겠다는 결의로 임할 수 있는 작품에 출연하는 것."

 

 

덧.

답답하리만큼 우직하게 자신의 주장을 밀고나가는 김경호를 보면 '꼴통'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데

그는 스스로를 보수라고 말한다.

그가 말한 보수란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다.

그랬다. 일제시대에 전재산을 털어 항일 운동을 했던 이시영도 원칙을 지키는 보수였고,

하나된 조국을 꿈꿨던 김구도 보수였다.

원칙을 지키는 우직함이 아름다웠던 보수라는 말이 지금은 그 뜻이 변해버렸다.

'자기 것을 잃지 않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들.

말도 안되는 허언으로 사실을 왜곡하고 기만하는 자들'을 일컫는 말로.

진정한 보수의 의미를 찾는 2012년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