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교육&인문학 강의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https://dia-na.tistory.com 2020. 8. 24. 09:01

시선으로부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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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진행자되기

대학로에서 신사모 모임을 갖고 각자의 근황을 얘기하다가

올해 자율휴직 중인 박현희샘이 구로구의 한 복지관에서 '독서토론진행자되기'란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참가신청을 했다.

처음엔 홍보가 덜 되어 인원이 안차나... 했는데, 순식간에 입소문이 나서 대기자가 넘쳤었다고.

 

'독서모임진행자되기' 첫번째 책은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

프로그램 시작 전부터 복지관 담당자로부터 꼭 책을 지참하고 오라는 연락을 거듭 받아서 인근 도서관에 책을 대출하려고 검색해보니 이미 최대 대기자 명단까지 꽉 차 있어 알라딘에 주문해 읽지도 못한채 들고 갔다.

안 읽어와도 된다는 말에 안심하고 갔는데, 첫날은 퀘스천 카드로 짝과 아이스브레이킹을 하고 <시선으로부터>낭독에 들어갔다.

 

독서토론모임 형태 중 낭독모임은 책을 읽어오지 않아도 되는 이점이 있어 가까운 이웃이나 직장에서 쉽게 시작할 수 있는 독서모임이라고 강추하셨다. 현희샘은 읽고 싶지만 쉬이 읽어지지 않는 <일리아드>를 학교샘들과 낭독모임으로 1년에 걸쳐 완독하셨다고. - 내년에 시도해 보려고 한다.

 첫날, 10명의 참가자가 <시선으로부터>를 한쪽씩 낭독을 하며 2회전을 한 뒤 읽은 부분까지 각자 하나의 키워드를 쓰고 그 이유를 말하는 시간을 가졌다.

 

 

낯선 이들과의 아이스브레이킹에도 유용하겠지만, 오랫만에 만난 친구들사이에도 사용하면 유용할 퀘스천 카드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살아 생전에 제사를 거부했던 걸출한 여걸 심시선 여사 10주년 기일에 장녀의 주도로 하와이에서 추도식을 갖는 심Line의 이야기다.

영화 <안토니아스 라인>의 모계 사회를 떠올리게 하는데, 심시선으로부터 뻗어나온 3대의 인물들이 각각의 이야기를 펼치기 때문에 특이하게 책 앞부분에 가계도가 올려져 있다.

 

 

 

책을 읽다보면 인물 하나하나에 부연 설명을 붙이고 싶어서 심시선 가계도를 직접 작성해보았다.

마인드맵 프로그램으로 했다가, 파워포인트로 했다가 시행착오 끝에 그냥 한글로 완성. 온종일 심시선 여사네에서 삽질을 해댄 결과 책 내용을 이렇게 압축했다.

 

짜잔~

 

-인물 카테고리의 빨간색은 심시선 여사의 제사에 올리는 각자의 제물이고, 파란색의 문장부호는 해림이가 바라본 사촌들의 문장부호로본 이미지다.

 

작가는 후기에서 이 책을 쓴 의도를 이렇게 말한다.

 

이 소설은 무엇보다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이다.

나의 계보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그것이 김동인이나 이상에게 있지 않고 김명순이나 나혜석에게 있음을 깨닫는 몇 년이었다. 만약 혹독한 지난 세기를 누볐던 여성 예술가가 죽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남아 일가를 이루었다면 어땠을지 상상해보고 싶었다. 쉽지 않았을 해피엔딩을 말이다. 또 예술계 내 권력의 작동 방식에 대한 소설이기도 하다.

 

다양한 인물 군상이 일제시대 하와이 사탕수수 노동자에게 사진 결혼으로 팔려가다시피 한 여성사에서부터 세상에 대한 울분을 여성에게 분풀이하는 여성혐오범죄와 진정한 제사의 의미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함께 나눌 이야기가 무궁무진한 책이다.

 

질문자: 성공적인 결혼의 필수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심시선: 폭력성이나 뒤틀린 구석이 없는 상대와 좋은 섹스. 20

심시선 :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구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인생에 간절히 필요로 하는 요소를 한 사람이 가지고 있을 확률은 아주 낮지 않을까요? 21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구하면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이 너무도 와닿는다는 의견에 모두들 동조.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

 

박원순 시장 관련 보도에서 저 말이 인용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이 많이 회자되었다고.

 

여기가 천박한 시장 바닥이 되는 걸 막으려는 사람들은, 착취적이지 않은 진짜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은 모두 로컬이라고 부를 수 있겠죠. 214

 

심신선 여사의 큰 딸 명혜는 엄마의 제사에 하와이 현지에서 1주일동안 배운 훌라춤을 올렸다.

명혜를 통해 우리에겐 선정적인 원주민 춤으로만 인식되는 훌라가 미국인들에 의해 훌라춤이 가진 정신을 훼손시켜 관광객용 선정적인 춤으로 격하되었음을 알게 된다. 하와이 사람들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읽어낼 수 있는 부분.

언젠가 하와이에 가게 된다면 1주일 정도를 머물며 꼭 훌라춤을 배워봐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앞으로의 여행은 유명 관광지를 관광하는 차원이 아니라 한곳에 오래 머물며 현지의 문화를 체험하는 방향으로 굳어지겠구나... 를 확신하게 되는 장면이다.

 

그래도 여자 아이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걸 모조리 경제적인 이유로 설명할 수는 없어요. 공기가 따가워서 낳지 못하는 거야. 자기가 당했던 일을 자기 자식이 당하는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견딜 수가 없어서. 혼자서는 지켜줄 수 없다는 걸 아니까. 한국은 공기가 따가워요. 322

 

이 책은 남자들이 읽기엔 따가울 수 있겠다. 남녀로 구분짓던 통념을 거침없이 깨뜨리기도 하고, 이렇게 꾸짖기도 하니까.

 

마지막으로 2번째 모임에서 말했던 이 책의 구성에 대한 소감.

 

대학원수업에서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발표한 적이 있는데, 그떄 정윤수 교수님은 <소년이 온다>에서 다양한 화자가 등장하는 이유는 5.18을 더이상은 기존의 단일한 서사구조로는 표현할 수 없는 지점에 와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마찬가지로 <시선으로부터> 또한 다양한 화자가 등장하는데 그 이유가 <소년이 온다>와 비슷한 것 같다. 이 시대는 더이상 한 사람만의 영웅의 서사를 원하지 않는다. 그럴 수없는 시대에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의견, 다양한 목소리가 하나로 관통되어 조화를 이뤄가는 세상. 그래서 이 시대의 유행가도 조각조각 이어서 하나의 주제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