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양식에 맞춰 고쳐 쓴 박노해사진전 후기

https://dia-na.tistory.com 2010. 12. 26. 16:53

 

사진전 다녀오고 나서 되는대로 글을 올렸다가 최근 사회교사모임 회지에 실릴 글이 궁하다하여 사진전 후기를 썼습니다.

발제양식에 맞추지 않은 게 맘에 걸려 회지에 쓴 글을 다시 올려봅니다.

그날 작가와의 대담때 나눴던 글을 좀 다듬었습니다.

 

다시 회고해보니,

원칙없이 방목하여 두 아이를 키운 것이 후회스럽습니다.

 

 

 

아름다운 것은 다 제자리에 있다

                             - 박노해 사진전 <나, 거기에 그들처럼> 을 다녀와서


정양례 / 하안중학교 framie@hanmail.net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중3 담임을 맡았습니다. 짧은 재직 기간 중 대부분을 중3담임을 했으니 해가 갈수록 연륜이 쌓여 학교생활이 편안해질 만도 하련만, 시대가 하 수상하다보니 늘 무언가에 쫓기듯 하루하루를 연명해가는 것 같습니다. 2학기 들어 무척 분주해질 걸 예측했으면서도 ‘경기교사 독서토론 연수’에 덜컥 신청을 해버렸습니다. 너무 시간에 내몰리며 사는 삶에 이 주에 한번 정도는 뒤돌아볼 시간을 갖게 될 것을 희망하며 그랬던 것 같습니다. 희망과는 반대로 덕분에 2배 정도 가뿐 숨을 쉬며 살게 되었지만, 독서활동 중 하나로 전시회장을 찾은 것은 소소한 기쁨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나 거기에 그들처럼> 박노해 사진전이 10월 7일에서 25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습니다. 그중 작가와의 만남이 있는 10월 14일에 전시장을 찾았습니다.

두 시간이 넘게 진행된 작가와의 만남 중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부모 되기’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7살 때 돌아가셨다는 시인의 아버지에 대한 인상 깊은 기억은 2가지라고 합니다.

 

아주 어렸을 적 전라선 열차를 타고 가던 때의 일이랍니다. 달고 시원하기로

유명한 나주배를 먹거리로 열차에 올랐던 아버지는 크고 탐스러운 배를 깍아 조각을 내더니 어린 기평에게 이르기를 나이 드신 분께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한 조각 한 조각 객실에 앉아 계신 어른들께 배 조각을 나눠드리고 나니 결국 배 조각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뾰로퉁해 있는 기평의 입에 배 꽁지 한 토막을 넣어주시던 아버지는 “배는 꽁지가 맛있다.”라고 말씀하셨답니다. 그러나 기적은 그 다음에 일어났습니다. 배 한 조각씩 나눠드신 객차안 사람들 사이에서 삶은 달걀이 건네어 지고 뒤이어 오징어 다리와 보리개떡이 넘나들며 이야기가 풍성해졌습니다. 이러 저런 심부름으로 열차 안을 바쁘게 오가던 기평에게 어르신들은 “그놈 간푸게 생겼다”라며 머리를 쓰다듬었던 기억이 오래 오래 가슴에 남았답니다. 저도 처음 들은 ‘간푸게’라는 말은 전라도에서 똘망똘망하고 장난스러운 아이를 일컫는 형용사랍니다. 아버지는 어린 아들에게 작은 베품이 더 큰 베품을 낳고 낯선 사람들의 마음을 열게 한다는 걸 일깨워주신 것이죠.

 

 어느 해인가는 아버지께서 300년 된 금강송으로 집을 지으신 뒤 기평을 데리고 할머니 묘소를 찾아 주변에 금강송 12그루를 심으셨답니다. “우리 집은 튼튼히 지어서 300년은 갈 것이다. 300년 후에는 이 금강송이 자라 새집을 지어줄 것이다.” 어린 마음에 무슨 일을 하려면 300년을 내다볼 정로 긴 안목을 지녀야 함을 깨달았던 순간이었답니다.


 흔들림 없이 조근 조근 물음에 답하시던 시인에게 누군가가 부모 되기의 어려움에 대해 물었습니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 시인은 결심했다는군요. 아이에게 어떤 요구와 교육을 하지 않는 대신 세 가지를 지키게 하겠다고.


 첫째, 내 아이가 자연의 대지를 딛고 동물과 마음껏 뛰놀고 마음껏 잠자고 마음껏 놀며 고유한 자기 개성을 찾아갈 수 있도록 자유로운 공기 속에  놓아두어라.


 둘째, 안되는 건 안된다는 걸 새기게 하라. 살생을 해서는 안되고, 약자를 괴롭혀서는 안되고, 물자를 낭비해서도 안되며 거짓에 침묵 동조해서는 안된다. 안되는 것은 절대 안된다는 걸 알게 하라.


 셋째, 평생 가는 좋은 습관을 들여 주어라. 자기 스스로 자기 일을 해 나가기, 채식 위주로 뭐든 잘 먹고 많이 움직이고 많이 걷는 몸 생활 하기, 늘 정돈된 몸가짐으로 예의를 지키기, 아름다움을 가려보고 감동할 줄 아는 능력과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홀로 조용히 머무르기, 우애와 환대로 많이 웃는 습관들이기

 

내 아이의 부모로서 내가 할 유일한 것은 내가 먼저 잘 사는 것이요, 내 삶을 똑바로 사는 것입니다. 좋은 부모보다 한 사람의 좋은 벗, 닮고 싶은 인생의 선배가 되고, 내가 뒤쳐진 존재가 되지 않도록 아이에게 뜨겁게 배우는 것, 믿음의 침묵으로 지켜보는 것이 부모로서 할 일입니다.


시인은 대담조차도 시낭송처럼 합니다.

만유인력은 뉴튼의 사과뿐만이 아니라 젊음도 꿈도 첫 마음도 떨어뜨린답니다. 사회는 진공상태가 없어 더 강하게 뭔가를 세우지 않으면 지켜지지 않는다는 말도, 내일부터 봄날은 간다는 말도 기억에 남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자신이 없다는 젊음에게는 이런 말씀도 하셨답니다. 자신감을 가지려면 자신을 버리면 된다. 자신을 세우려면 비교할 뭔가가 있기 때문에 자신감이 없는 것이다. 실패해야 이룰 것을 이룬다. 실패해서 헛된 희망과 욕망을 버려라. 상처를 많이 받아라. 상처받는 지점이 가장 욕망하는 지점이다. 상처가 희망이다.

  

 두 시간이 넘게 진행된 대담이 끝나고 전시장을 찬찬히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전시회는 12년여 동안 중동과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의 분쟁지역과 빈민촌을 다니며 찍은 사진 13만여 장 중 120장을 선별해 전시 중이었습니다.

그 많은 사진들 중 제 시야에 장 먼저 들어온 사진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오래된 직접 민주주의 Cochamuco,Crusco,Peru,2000

3개월마다 열리는 께로족의 총회 론다 컨퍼렌시아.

일곱 개의 마을에 흩어져 살고 있는 께로스인 전체가 모여

부족 공동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중요한 회의이다.

께로 주민들의동의를 얻어 외부인으로는 처음으로 참석하였다.

이날 130여명의 남녀노소가 초원에 빙 둘러앉아

찬 비와 우박을 맞아가면서도 무려 여섯 시간 동안 회의는 계속되었다.

나이 어린 사람이건 부녀자건 모두가 발언하고 모두가 경청하고

거침없는 토론을 통해 전원합의에 도달하는

유구한 직접민주주의가 살아있는 놀라운 현장이다

 

 

120여점의 사진들엔 이처럼 시인의 단상이 달려 있습니다. 이야기가 있는 사진전이랄까. ‘오래된 직접민주주의’는 직접민주주의의 기원을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찾는 이들에겐 한 방 먹이는 사진입니다. 여자와 노예와 외국인을 정치에서 배제했던 고대 그리스인에 비해 이 얼마나 놀라운 광경인지.

 지금도 께로족은 태양열 전기 도입을 앞두고 계속 토론중이랍니다. 태양열 전기를 도입하는 것을 어디까지 할까, 학교가 있는 공회당으로 할까, 아니면 가정에도 확대할까, 그걸 경우 그 파급력은 어떠할까, 소수를 패배자로 만들지 않기 위해 전원 합의에 도달할 때까지 토론을 지속하는 그들의 오랜 전통에 경배를!


전시장에서는 120여점의 사진이 아름답게 실린 사진집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차마 비싼 그 아이는 못 들여오고 사진도록만 구입해 뻔뻔하게 싸인을 받아왔습니다. 붓펜으로 한자 한자 정성들여 문구를 써 주실 땐 어찌나 부끄럽던지요.

 

▶ 내 아름다운 것들은 다 제자리에 있다 Lalibela,Ethiopia,2009

오늘은 새해아침

물을 길으러 높은 산맥 길을 걷는 어머니와 그 뒤를 따르는 아들의 발걸음이

산정을 울린다. 자신이 살아가는 땅을 조금도 망치지 않고 가난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 저 강인한 삶의 행진에 여명이 밝아온다.

 

<나 거기에 그들처럼>이란 제목의 도록을 펼치면 같은 제목의 시가 실려 있습니다.


거기에 그들처럼

               박노해


페루에서는 페루인처럼

인도에서는 인도인처럼

에티오피아에서는 에티오피아인처럼

이라크에서는 이라크인처럼

그곳에서는 그들처럼


가난의 땅에서는 굶주린 아이처럼

분쟁의 땅에서는 죽어가는 소녀처럼

재난의 땅에서는 떠다니는 난민처럼

억압의 땅에서는 총을 든 청년처럼

그곳에서는 그들처럼


나 거기에 그들처럼


 

‘내 아름다운 것은 다 제자리에 있다’는 제목의 사진을 보며 정말 그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시리아 사막에서 저녁기도를 바치는 이라크인들 A border areaof Syria and Iraq,2008

경을 넘어 생필품을 구하러 가는 이라크인.

붉은 석양이 물들어 가는 시리아 사막길에서

이라크인들은 하루 다섯 번의 기도인

‘살라’중 해질녘에 드리는 네 번째 기도인 마그립을 바친다.

노을이 지고 어둠이 올 때까지 일어설 줄 모른다.

무릎 꿇는 힘으로 다시 일어서기 위하여.

 

 

시인은 미국과 서구에 가면 이슬람 테러리스트 취급을 받고, 중동 순니파 나라에서는 시아파로, 시아파 나라에서는 순니파로,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중남미 정부에서는 감추고 싶은 소수민족의 진실을 밝히는 위험분자로, 고국에 돌아오면 한미동맹과 전투병파병의 걸림돌로, 심지어 '빨갱이'와 변절자'로 비난 받으며 불온한 존재로 취급 당해왔다는데 그의 사진들에서는 한결같이 힘겹게 살아가면서도 강인함을 잃지 않은 민초들의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듯 합니다.

 

▶ 게바라에게 최후의 식사를 드린 여인

La Higurera,Sata Cruz,

Bolivia2010

 

▶ 게바라의 길

La Higurera,Sata Cruz,Bolivia,2010

 

체 게바라가 총상당한 라 이게라로 가는 길.

체 게바라의 길에서는 피기침 소리가 난다.

권력과 영예로 가는 환한 오르막길과

사랑으로 가는 어두운 내리막길.

나는 결정의 순간마다 체 게바라의 갈림길에 선다.

 

 

 

‘오래된 직접 민주주의’와 함께 오랫동안 잔상이 남았던 두 개의 사진입니다. 체 게바라가 가는 길에 지상의 마지막 온기였을 식사를 제공했던 소녀가 반세기가 지난 오늘 체의 사진을 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엔 슬프면서도 자랑스러운 기운이 서려있습니다. 게바라가 사형장으로 향했던 길에 지금은 이정표가 있습니다. 어찌 보면 서대문 형무소의 사형 집행장 가는 길을 떠올리게 만드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아침 체조를 위해 격벽장으로 가는 길과 사형장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사형수들은 매일 아침 가슴이 서늘했다지요. ‘게바라의 길’에도 그런 서늘함이 배어나오는 듯 합니다.


시인은 사진을 일컬어 ‘빛으로 쓴 시’라 하였습니다.  대담 중 힘주어 하신 말씀이 도록 뒤편에 수록된 ‘작가의 글’에 있더군요.

 

 

▶ 께나를 불며 만년설산을 넘어가는 귀갓길 Cochamuco,Crusco,Peru,2000

안데스 고원의 께나 소리는 한 맺힌 대지의 가슴에서 울려오는 것만 같다.

께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그 뼈를 다듬어 연주했다는 잉카 전통의 악기이다.

안데스 산맥을 넘어가는 구슬픈 께나 소리가 희미하게 끊어질 듯 이어지고,

오래된 이 삶의 풍경은 오늘도 끊어질 듯 다시 이어진다.

 

 

세계의 진실은 쉽게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다. 사랑한 만큼 보이는 것이다.’

사랑은 곧바로 쏘아진다!

자신의 가슴을 관통당하지 않으면 ‘불꽃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

지난 12년 동안 많은 산을 넘고 많은 강을 건너왔다.

불타는 사막과 광야와 눈보라 치는 고원을 걸으며 나는 인류의 네 가지 위기를 목격해왔다.

전 지구적 ‘생태위기’와 ‘전쟁위기’, 세계화된 ‘양극화 위기’와 ‘사회적 영혼의 위기’를.

세계화는 실상 ‘자본권력의 세계화’였다.

물신과 탐욕의 세계화는 국경을 지우고 자급자립의 삶터를 지우고

세계를 ‘평평히’점령해나가고 있었다.

유구한 전통과 권위의 산들은 무너져 내리고 고

유한 마을들과 개인들은 가림막 하나 없이 시장만능의 거센 바람 앞에 떨고 있었다.

 아무 힘없는 나를 붙들고 그이들은 울부짖는다.

자신을 밟고 쏘고 빼앗는‘국경없는 적들’을 향해,

 

“우리를 죽이지도 말고 우리를 도우려 하지도 마라

 우리를 수탈하지도 말고 우리를 동정하지도 마라.“

“왜 당신들이 우리 삶을 마음대로 결정하는가? 우리 땅에서 우리답게 살아가게 내 버려두라”고.  

 

- 작가의 글 중-

 

그들만의 고유한 역사가 찬찬히 흘러가는 모습은 그 자체가 아름다운 광경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내 아름다운 것은 다 제자리에 있다고 하셨겠지요. 하지만 사진 속 풍경이 온전히 남아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문득 대담 첫머리에 시인이 들려주었던 ‘풍란’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시인이 어릴 적 어른들과 함께 고깃배를 타고 바다에 나간 적이 있었답니다. 칠흑같이 어둔 밤, 별의 안내가 사라지고 험한 파도가 몰려오자 마을 어르신은 눈을 감고 코 끝에 밀려오는 냄새에 집중하라고 하셨답니다. 바다 내음이 아닌, 어디선가 희미하게 퍼져오는 향기. 그곳을 향해 온힘을 다해 노를 저어나갔고 배는 안전하게 육지에 다다랐답니다. 그 향기의 정체는 풍란. 바위틈에서 7년만에 꽃을 피우며 그 향기는 20리를 간다는데 뱃사람이 뱃길을 잃을 때 이정표가 되기도 하는 향기라고 합니다. 저희더러 풍란같은 사람이 되라 하셨던가요?


 위대한 작가의 탄생은 단순한 유전자의 축복이 아니었구나를 깨달았던 시간이었습니다.

박기평이 박노해로 거듭나기 전

그의 주변엔 풍란의 지혜를 가진 마을의 어른과 넒고 깊은 아량을 지닌 아버지가 계셨습니다.

 아이는 온 마을이 기른다는 말이 새삼 떠오르는 시간이었습니다.

렇다면 나는 우리 아이에게 무엇을 주었을까?

온전한 마을도, 깊은 아량도 보여 못한 체 힘겨운 사춘기를 보내는 딸아이를

그저 누구나 겪는 사춘기의 발광이겠거니 했던 것이 부끄러워지더군요.


 전시회를 가기 전 신문에 실린 그의 시 한편을 학급 아이들에게 ‘쪽지’글로 나누어주었습니다.

마음에 문득문득 가시가 돋을 때 풍란 이야기와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참사람이 사는 법


손해 보더라도 착하게

친절하게 살자.

상처 받더라도 정직하게

마음을 열고 살자

뒤처지더라도 서로 돕고

함께 나누며 살자

우리 삶은 사람을 상대하기보다

하늘을 상대로 하는 거다

우리 일은 세상의 빛을 보기보다

내 안의 빛을 찾는 거다.


 

덧붙이자면 사진 한 장 한 장이 고풍스러운 위엄을 보이는 건 흑백이 주는 무게도 있겠지만,

우리나라 최고의 인화장인이 수동 인화를 했기 때문이라더군요.

여럿이 아닌 홀로 혹은 둘이 좀 더 찬찬히 둘러보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많았던 사진전이었습니다.

 

 

 

▶ 도록 속지에 정성들여

써 주신 글도 자랑해 보네요~

출처 : 경기독서토론연수
글쓴이 : framie(정양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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