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독후감 올려요 <생강>

https://dia-na.tistory.com 2011. 9. 19. 20:29

생강을 읽고

-누구에게나 생강같은 존재로 여겨지는 순간이 있다.

 

 

1. 나이를 먹는다는 건

 

망각의 속도가 가속도를 더해간다는 것이다. 책은 읽었는데 등장인물의 이름을 까먹는 건 다반사고 나를 미치게 하는 것은 책이든 영화든 결말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거다. 소소한 사건들은 생각나는 데 왜 꼭 결말이 기억나지 않는단 말인가.

그래서 생각해 낸 각오. ‘그래. 1주일에 한권씩 책을 읽고 독후감을 블러그에 올리는거야.’ 라고 결심한지 한 달이 지났지만 실행은 미적미적. 그러다가 마인드맵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오호라, 이런 신천지가 있었다니. 마인드 맵 프로그램은 애초에 중 2역사를 담당하면서 아이들에게 쉽고 오래 기억에 남기는 수업을 하기 위해 매달렸던 것인데, 요즘엔 책을 읽고 난 후 마인드맵 프로그램에 서지정보, 등장인물, 줄거리, 인상깊은 한줄 등으로 나누어 저장하고 있다. 독토를 통해 알게 된 작가 천운영씨의 책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작성해 봤다. 이렇게.

 

 

첨부파일 생강독후감.hwp

< 생강 마인드 맵 >

마인드 맵 그로그램(이것은 컨셉트리더란 프로그램임)으로 봐야 선명하게 보일 터지만 한글로 불러들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그림파일로 저장했다. 그래서인지 눈이 안 좋은 사람들에겐 이걸 들여다 보는 게 고역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오로지 나의 쇠락해가는 기억력 감퇴를 막기 위한 전술이므로 타인의 불편함까지 감안할 수가 없다. 형태를 보여주기 위해서 ‘인상깊은 한 줄’은 여기에선 삭제했다. (긴 글이 들어가면 전체적인 마인드맵의 글씨가 작아져버린다.)

 

2. 너무나 생생한 하지만 쉽게 잊고 사는 어제의 역사

 

천운영씨의 전작들을 보면서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누구에게나 감춰진 어둠-타인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조악한 심성을 낱낱이 파헤쳐 파국에 이르는 장면이 너무 많아서였다. 굳이 이렇게까지 드러내야 하나? 작가의 삶이 얼마나 신산스러웠기에 이런 글이 나왔을까. 그래서 <생강>을 책상위에 두고서 펼치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생강>의 첫 페이지를 여는 순간 반사적으로 불곰 ‘이근안’을 떠올렸다. 우리 역사가 뒷걸음질 치고 있는 오늘, 작가는 대담하게도 군사독재의 버팀목 역할을 했던 고문기술의 현장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이근안이 어떻게 되었더라? 궁금해져서 그 이름을 검색해보았다. 작가가 <생강>을 쓰게 된 계기도 고문기술자 이근안이 10년 동안 은신했던 곳이 자신의 집 다락방이라는 기사를 보고 나서였다는 <생강>관련 기사와 함께 이근안의 작년 기사가 떴다. 7년간 옥살이를 할 때만 해도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는가 싶더니, 출옥 후 목사가 되었다고 한다. 헉... 그냥 신도도 아니고 목사라니. 도대체 누가 누구를 이끌겠다는 말인가. 게다가 그가 하고 다니는 행동은 혀를 내둘게 한다. 자신은 잘못이 없고 억울하단다. 여전히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빨갱이와 비빨갱이뿐인가 보다. 자기 편이 아니면 무조건 빨갱이.

 

<생강>에서도 고문기술자 안이 고문으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이곳 저곳을 떠돌다 아내가 운영하는 미용실의 다락에서 10년간 은신하게 된다. 다락방은 애지중지 하는 자신의 딸이 아끼는 공간이다. 아버지의 정체를 몰랐던 딸, 선이는 기사를 통해 그 실체를 알게 되고 한때는 자신에게 신이었다가 장물이 되고 동물이 되어버린 아버지를 경멸하게 된다. 소녀같은 감성으로 캠퍼스 씨씨를 꿈꿨던 선이는 그 꿈을 이뤄줄 것 같은 민에게 자신의 아버지의 정체를 말하는 순간 외면당하게 되고 친한 친구인 진이와도 절교를 하게 된다. 아버지의 삶으로 인해 자신의 삶까지 파괴당한 선이는 대학을 떠나 대형미용실에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지만 그곳에서도 그녀는 안착하지 못한다. 김치안의 생강 같은 존재. 씹다가 불쾌감을 주기 때문에 골라내고 싶은 그것. 선이는 자신을 생강처럼 거북해하는 그곳을 나와 엄마가 운영했던 초원미용실로 돌아온다. 아버지로 인해 삶이 파괴되었던 청년을 통해 아버지의 숨은 과거를 속속들이 알게 되고 종국엔 아버지에게 자수를 권유한다.

소설과는 다르게 이근안은 아들만 있다고 한다. 그러나 소설에서 ‘안’의 상사로 나오는 ‘박’은 실제하는 인물이다. 박처원. 대공경찰의 대부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주도했던 치안본부 5차장. ‘경찰발전기금’으로 10억원을 받아내 이근안의 도피자금을 마련해 준 것도 실제 이야기다. ‘우리가 남이가’로 버무리는 ‘우리’의 연대의식은 옳고 그름의 판단마저 저버리게 만든다.

 

3. <생강>의 맛

소설을 읽다보면 주인공의 이름이랄지 장소명이 뭔가를 상징하지 않을까 생각할 때가 있다. 고문기술자 안의 아내가 운영하는 미용실의 이름, 초원이 그렇다. 초원. 사람에 의한 사람의 억압이 없는 곳. 원초적인 자유가 펼쳐진 곳. 그 어떤 상처라도 넉넉하게 품어줄 것 같은 초록의 대지. ‘안’은 자신이 속해있던 부서가 쓸모없는 불가사리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순간에 초원미용실 다락방에 숨어들어 은신을 한다. 그곳에서 동물처럼 10년을 버틴다. 초원위의 초라한 늙은 사자가 되어.

 안이 자수를 한 뒤 그곳을 운영하던 선이는 미용실을 리모델링 하며 이름을 바꾼다. 더 이상 동물이 안식을 취하는 초원이 아니기에. 초원미용실은 생강의 사각사각한 소리(가위질 소리)와 달콤했던 기억과 쌉쌀한 현재의 모습이 버무려져 있다.

안이 근무했던 치안본부실은 생강의 아리고 텁텁한 맛이 나지만 무엇보다도 생강이란 존재를 가장 잘 드러난 곳은 선이가 레코드가게 옆에서 서성이던 남자와 나누는 대화에서였다.

 

사람들은 왜 김치를 먹다가 생강을 씹으면 싫어할까요 . 어떤 사람들은 나를 김치 속에 든 생강 조각처럼 골라내고 싶어해요 ”

 

살다보면 누구나 김치 속의 생강 같은 존재처럼 여겨지는 순간이 있다. 그럴 경우 그냥 그곳에 머물러야 하는지, 아니면 자존심을 세우며 뛰쳐나와야 하는지 판단조차 서지 않는 순간. 어떤 때는 그런 순간의 연속인 경우도 있다. 생존을 위해 자신이 생강같은 존재라는 걸 알면서도 김치속에 깊숙이 박힌 체 틀어박혀 버티기도 한다.

 

생강은 향과 즙을 통해 다른 재료를 변화시키지만 -고기냄새 제거- 질긴 섬유질은 환영받지 못해 요리 과정에서 버려지곤 한다. 생강이 향과 즙을 뿜어내면서도 끝끝내 포기하지 않는 질긴 섬유질. 그것이 고문기술자 ‘안’을 닮았다.

 

난 잘못한 것이 없다. 사람을 때리는 건 어쨌든 나빠요. 내가 때린 건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이었어요. 틀린 사람들이었다. 다른 사람들이었지요. 맞을 만해서 맞은 거다. 맞을 만해서 맞았다고 믿게 만드는 게 더 나빠요. 정의를 위해서였다. 당신을 위해서였어요. 아버지를 위해서였다. 아버지는 당신을 버렸어요. 가족을 지키려고 그랬다. 그래서 다른 가족들이 사라졌죠.

 

한때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저런 나쁜 짓을 하면서 죄책감에 시달려서 어떻게 살았을까?’ 하고 궁금했던 적이 있다. 그러던 어느날 깨달았다. 사람은 죄의식에 시달리면서 그렇게 오랫동안 나쁜 짓을 할 수 가 없다는 걸.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그릇된 신념을 죄라고 생각지 않기 때문에 그토록 오랫동안 못된 짓을 한다는 걸.

 

목사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고문기술자 이근안 또한 마찬가지일 것 같다. 그의 뇌는 그릇된 신념의 노예가 되어 옳고 그름의 판단 능력을 상실한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많은 사람들, 그의 가족들의 삶을 파괴시키고 그렇게 뻔뻔하게 나설 수는 없지 않겠는가. 게다가 이런 치들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나는 김치를 볼 때마다 감춰진 생강의 존재를 떠올리며 아웃사이더같은 내 삶의 일부분을 반추하고, 또 질긴 섬유질로 버티고 사는 고문기술자의 삶을 떠올릴 것 같다. 그것이 불편한 기억이라 해도 이 땅위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꼭 기억해야할 어제의 역사가 스며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럴 것이다.

 

출처 : 경기독서토론교육연구회
글쓴이 : framie(정양례) 원글보기
메모 : <경기독서토론연구회>카페에 올린 글을 스크랩해오다. 이번주 목요일(22일)6:30, 광명중학교에서 <천운영 작가와의 만남>이 있다. 이번주는 스케줄 대박! 교과모임, 작가와의 만남, 떠밀려서 하는 방과후 수업 시작, 결혼식 참석, 그리고 시험문제 출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