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https://dia-na.tistory.com 2011. 1. 18. 23:22

 

 

 

박노해 사진전에서 작가와의 대담이 있던 날

출간 예정인 시집 소개가 있었다.

 

출간 되면 사야지... 했다가 지난 주에 주문을 했다.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대담에서 해 주셨던 말씀이 이 시집안에 거의 다 담겨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시집이라 하기엔 참으로 비대하다.

 

마지막을 장식한 시는 책 제목 그대로다.

그리고 그 쪽수는 553이다.

 

소설보다도 더 두껍다.

그 안에 담긴 인생은 더 무겁다.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안데스 산맥의 만년 설산

가장 높고 깊은 곳에서는

께로족 마을을 찾아가는 길에

 

희박한 공기는 열 걸음만 걸어도 숨이 차고

발길에 떨어지는 돌들이 아찔한 벼랑을 구르며

태초의 정적을 깨뜨리는 칠흑 같은 밤의 고원

 

어둠이 이토록 무겁고 두컵고 무서운 것이었던가

추위와 탈진으로 주저앉아 죽음의 공포가 엄습할 때

 

신기루인가

멀리 만년설 봉우리 사이로

희미한 불빛 하나

 

산 것이다

 

어둠 속에 실을 잃은 우리를 부르는

께로족 청년의 호롱불 하나

 

이렇게 어둠이 크고 깊은 설산의 밤일지라도

빛은 저 작고 희미한 등불 하나로 충분했다

 

지금 세계가 칠흑처럼 어둡고

길 잃은 희망들이 숨이 주거가도

단지 언뜻 비추는 불빛 하나만 살아 있다면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세계 속에는 어둠이 이해할 수 없는

빛이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거대한 악이 이해할 수 없는 선이

야만이 이해할 수 없는 인간정신이

패배와 절망이 이해할 수 없는 희망이

깜박이고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그토록 강력하고 집요한 악의 정신이 지배해도

자기 영혼을 잃지 않고 희미한 등불로 서 있는 사람

어디를 둘러봐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무력할지라도 끝끝내 꺽여지지 않는 최후의 사람

 

최후의 한 사람은 최초의 한 사람이기에

희망은 단 한사람이면 충분한 것이다

 

새해 벽두부터 고단한 짐을 지셨던 손경란 샘께 이 시를 드리고 싶다.

그리고

읽는 순간 웃음이 번졌던 시 한편도 올려본다.

박현희 샘의 가슴에 꽂혔다던 시, '후지면 지는 거다'

후지면 지는 거다

 

불의와 싸울 때는

용감하게 싸워라

 

적을 타도할 수 없다면

적을 낙후시켜라

 

힘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다

돈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크기로 이기는 거다

미래의 빛으로 이기는 거다

 

인간은, 후지면 지는 거다

 

웃는 나의 적들아

너는 한참 후졌다

 

 

마침 이번 주 해외기사로 '튀니지의 봄'이 떳다.

튀니지판 전태일인가. 대학 졸업후 취직을 못해 노점상을 하던 청년 무함마드 부아지지(26)의 분신자살이

23년간의 독재를 끝장내는 불을 지폈다.

전체 인구의 65%가 25세미만인 나라.

그래서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가 위력을 발휘하는 나라.

그래, 인간은 후지면 지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