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고독속으로 달아나라 』, 노재희, 작가정신, 2013

https://dia-na.tistory.com 2013. 8. 25. 01:55

 


너의 고독 속으로 달아나라

저자
노재희 지음
출판사
작가정신 | 2013-05-3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먼저 나의 무지와 편견에 대해 고백해야겠다.

박경주샘이 이 책을 제자가 쓴 책이라며 독토 목록으로 추천했을 때,

'신인 작가', '제자가 쓴 책'이란 말이 먼저 주는 뉘앙스는 '검증되지 않은'이었다.

일반 책보다 작게 나온 판형도 쉬이 손이 가지 않는 데 한 몫을 했다.

그러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을 잠시 뒤로 하고 읽은 이 책의 매력은 잠시 도스토예프스키를 잊게 했다.

 

한때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되돌려보며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그 나이에 맞는 감성을 잘 짚어내는 왕가위감독과

동시대에 같이 나이를 먹어가고 있음에 감사하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

노재희의 소설은

그런 90년대의 왕가위와 무라카미 하루키를 떠올리게 한다.

30대 중반이후의 세대가 공감할 생활속 이야기를 적절한 거리를 두고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집에는 8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 고독의 발명

- 누구 무릎에 꽃이 피나

-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

- 시간의 속

- 그날저녁, 그는 어디로 갔을까

- 성가족

- 생활의 기술

- 당신 손목을 붙드는 그림자

 

그 중 <고독의 발명>에 소설집의 제목 '너의 고독속으로 달아나라'가 들어있다.

'너의 고독속으로 달아나라'는 원래 니체의 책에 나오는 구절이라고 한다.

젊은 날 시인을 꿈꾸었던 엄복태는 '시인의 아내로 만들어줄게'란 말로 구애를 하고 결혼에 이른다.

그런데 현대인의 삶에 시를 쓸 정신적 여백이 남아있었던가.

동기의 시집 출간소식에 엄복태는 잊고 있었던 시인의 꿈을 다시 끄집어 내며 스스로 밤 10시를 고독의 시간으로 정한다.

고독의 발명이다.

 

그가 근무하는 곳에는 그런 고독을 견디지 못하는 상사 김부장이 있다.

 

김부장은 고독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었다.

혼자 있을 수 있는 자만이 관계에 매달리지 않고 오히려 좋은 인간관계를 꾸려나갈 수 있다는 것이 엄복태의 생각이었다.

 

아마도 이 부분 때문이었을까?

장미성샘은 26인가 27인가 하던 시절, 교단에서 아이들에게

'이혼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 결혼 해라'라는 말을 했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런 말을 자신이 한 기억조차 까맣게 잊고 있는데  제자들이 찾아와 상기시켜주었단다.

88년 올림픽 열기 한켠에서 베스트셀러로 올랐던 시집 <홀로서기>에서도

'둘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홀로 선 둘이 만나는 것이다'란 구절이 유행가처럼 회자되곤 했었다.

이십 대 중반에 결혼에 대한 통찰을 했던 장샘의 능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 고독의 발명> 은 엄복태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리라.

참여연대 강연에서 박노자 교수는 오랫만에 돌아온 한국의 지하철 안 풍경이 너무나 달려져 있다고 통탄했다. 지하철안에서 신문을 보고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었다던가. 모두들 스마트폰에 빠져 있느라 책과 신문을 들 겨를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스마트폰에 빠져 있느라 놓치는 것이 책과 신문뿐이었을까?

진짜로 놓치고 사는 건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이다.

눈을 떠 잠이 드는 순간까지 늘 온라인 상태인 현대인은 독서뿐만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을 잊은 체 살고 있다.

아마도 작가는 꼭 시인을 꿈꾸는 엄복태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고독해질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리라.

 

소설집에서 가장 공감을 많이 이끌어 냈던 단편은 < 당신 손목을 붙드는 그림자 >이다.

 

나, 진소영은 출판사에서 일을 하다 나와 간간이 교정과 번역을 하고 졸부들의 서재를 꾸며주는 것을 업으로 살고 있다.

그녀는 건축업자 박무석의 서재를 꾸며주며 그것이 인연이 되어 아토피를 앓고 있는 아들을 위해 박무석의 동네로 이사를 해

박무석의 딸에게 책을 읽히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책의 서두는 이렇다.

 

-자석은 영혼을 가지고 있대. 언젠가 어머니가 말했다. 영혼은 뭔가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인데, 자석은 철을 움직이니까. 지금은 기억나지도 않는 잘못을 저질러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고 있던 나는 잘못을 딱 잡아 떼고 있던 참이었다. 접촉하지 않고도 떨어져 있는 거리에서 작용하는 힘에 대해, 이를 테면 자기력 같은 것에 대해 말한 후 어머니는 본론을 꺼냈다. 내가 널 때리려면 팔을 뻗어서 너에게 닿는 거리만큼 다가가야 하잖아? 그치만 나는 너를 때리지 않고도 네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게 할 수 있다. 네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있어. 우리에겐 영혼이 있으니까.

    .................. 

어머닌가 해 준 자석산 이야기가 떠올랐다.

자석산 옆을 지나는 목선(木船), 그것은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이야기였다. 배는 자석산 옆을 지날 때면 목선을 지탱하고 있는 모든 못들이 빠져 자석산 쪽으로 날아가 붙었단다. 자석산에는 신밖에는 모를 만큼의 쇠붙이가 쌓여 있는데 그것은 모두 근처를 지나던 배에서 날아온 못들이었대. 마찬가지로 인간이 뭔가에 마음을 뺏기면, 자기의 부속품 하나하나가, 이를테면 그것을 바라보는 눈도 그것을 말하는 입술도 그리고 그것을 향해 내미는 손도, 모두 그것으로 빨려 들어가서 결국엔 끔찍한 몰골로 무너져 내릴 것 같아. 무서운 일이지. 자석산 근처엔 가지 않는 게 상책이란 말이야. 자력이 미치는 범위에 들어서면 일단 얘기는 끝난 거라고 봐. 어머니는 무서움 같은 것은 전혀 모르는 얼굴로 담담히 말했다.

  ..................

 

그런데 말야,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그걸 싫어하는 것은 참, 견디기 어려운 일이야. 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걸까, 그러면서도 계속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는 것도. 있잖아, 우리가 인생의 어느 순간, 빛나는 것을 보게 되면 나머지 인생 동안엔 그 그림자에 붙들려 살아야 하는 것 같아. 일단 어떤 아름다움을 알게 되면 우리는 평생 그 아름다운의 자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그것은 어머니가 내게 해준 이야기 중 가장 쓸쓸한 이야기였다. 그동안 어머니가 해주었던 책 속의 어떤 이야기가 아니라 어머니 자신의 이야기, 나처럼 하고 싶은 것도 이루고 싶은 꿈도 다 잊어버린 사람은 도달할 수 없는 어떤 경지에 관한 이야기.

 

나는 이 이야기가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방학동안 책을 잔뜩 주문해놓고 책에 빠져 있노라면

" 밥 안먹냐? "

하며 들어오시는 시어머니.

집에 있노라면 밥 때는 왜그렇게 빨리 찾아오는지...

서설이 긴 도스토예프스키의 책을 놓고 매 끼니를 차리고 치우다 보면 앞 내용을 다시 더듬느라 놓치는 시간이 많았다.

소설속 엄마처럼 찌개를 끓이다 태우기도 하고,

갈치조림을 하다 갈치를 후라이팬과 한몸이 되게 만든 적도 종종 있었다. (어디 갈치 뿐이랴... TT)

 

일단 어떤 아름다움을 알게 되면 우리는 평생 그 아름다운의 자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한마디를 가지고 독토모임에서 돌아가면서 자신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자석산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 나는 모르겠다.

갈치와 오징어와 쇠고기를 화형시키고도 소설속 어머니처럼 '책'이라고는 부끄러워 말을 못 꺼내겠다.

 

그러다가 문득 대학 4학년, <정치사상사>시간을 떠올렸다.

" 시적인 상상력이란 무엇인가? "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은

" 직관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세상의 때가 묻지 않아서 보고 느낀대로 바로 말하는데

시적 상상력이란 사물에 바로 다가가는 통찰력, 직관입니다."

(실제는 더 어수룩하게 대답했음)

라고 말해 교수님으로부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칭찬을 들었다.

" 직관, 그렇지. 자네는 철학을 공부해보지 그런가?"

 

그때 그 칭찬 ' 자네는 철학을 공부해보지 그런가'

라는 말이 오랫동안 가슴에 남아

어설프게나마 철학강좌를 쫓아다니고, 각종 강연을 찾아다니는게 아닐까.

그러고보니,

너의 고독속으로 달아나라』를 독토 목록에서 제껴 둔 이유도 그 때문이었나보다.

소설은 특히나 우리나라 여류소설가의 소설은 가볍다는 편견.

 

8월 19일 개학날 저녁 독토모임에서

< 당신 손목을 붙드는 그림자 >에 대해 이야기했던 내용들이 시간이 지나 하나 하나 흩어져 온전하게 옮기지 못하겠다.

- 각자가 자신의 감상을 카페에 올려주시길...

 

어쟀거나...

'한집에 사는 식구를 존경하기란 쉽지 않은데 그런 흔치 않은 행운을 준 남편'과 산다는 소설가 노재희.

그녀의 철학적 기반과 재능이 참으로 부럽다.

그래서 다음 작품이 더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