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맑스 재장전(Marx Reloaded)?!

https://dia-na.tistory.com 2014. 1. 21. 10:52

일전에 나는 올해 국내 출판계의 한 해 계획소식을 퍼오면서 올해는 “무색무취이고, 지리멸렬이다”라고 촌평한 바 있다. 그리고 그 일례로 지난 1~2년(2009~2010년) 영미권 출판계를 강타한 (목적의식이 뚜렷한) 트렌드를 언급한 바 있다. 이번 포스팅은 그 트렌트가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알려주는 소식이다. 무릇 트렌트는 이렇게 지속성이 있어야 한다. 언젠가야 끝나긴 하겠지만 적어도 3~4년은 꾸준히 이어져야 그게 트렌드이다. 그 트렌드의 정점은 짧더라도 말이다.

 

다름 아니라 제이슨 바커(Jason Barker, 1972~  )가 각본과 감독을 맡은 흥미로운 다큐멘터리 <맑스 재장전>(Marx Reloaded)이 곧 개봉된다는 이야기이다. 2011년 4월 11일 프랑스와 독일에서 첫 번째로 공중파를 탈 예정이라고. 이 다큐멘터리 홈페이지의 소개에 따르면 약 52분 가량의 이 다큐멘터리는 “독일의 사회주의자이자 철학자인 칼 맑스의 사상이 지난 2008~09년 전 세계에 불어닥친 경제·금융위기를 이해하는 데 적합한지의 여부를 탐구하는 문화적 다큐멘터리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매트릭스 리로디드>를 패러디한 애니메이션(레온 트로츠키가 모피어스 역할을 맡고, 칼 맑스가 네오 역할을 맡는다), 금융위기 전후의 전 세계 모습, 전문가 인터뷰 등으로 이뤄져 있다. 당신은 파란 알약을 집을 텐가, 빨간 알약을 집을 텐가?

 

 

바커가 인터뷰한 전문가는 그야말로 쟁쟁한 인물들로서 (국내 독자들에게 익숙한) 마이클 하트, 안토니오 네그리, 자크 랑시에르, 슬라보예 지젝, (그리고 국내 독자들에게는 아직 많이 낯선/낯설) 알베르토 토스카노, 닌나 파워 등이다(토스카노와 파워는 바커와 더불어 이른바 영미권 좌파의 ‘젊은 피’라고 할 만하다). 이들이 맡은 역할은 “오늘날 지구가 날로 겪고 있는 경제·환경 위기에 대한 해결책을 공산주의가 제시해줄 수 있느냐에 대한 답변이다.

 

 

 

바커는 또 다른 일군의 전문가들도 인터뷰했는데 노베르트 볼츠, 미샤 브룸릭, 존 그레이, 페터 슬로터다이크 등이 대표적이다. 볼츠는 발터 벤야민의 전통에 발 딛고 독일 미디어이론을 일군 선구자 중의 하나이니 맑스주의적이라고 할 만한데 (개인적으로 볼 때) 정치적 포지션이 모호하다. 그레이와 슬로터다이크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니힐리스트이니 맑스주의에 대해 새로운(비판적?) 관점을 제시할 듯하다. 브룸릭은 나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홀로코스트 전문가라고 하는 걸 봐서 (전체주의와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오인되고 있는) 맑스주의에 그리 호의적이진 않을 것 같다.

 

다큐멘터리 홍보(?!)는 이 정도로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서, 다시 한번 반복하지만 무릇 이런 게 트렌드이다. 눈치 빠른 분들은 이 다큐멘터리에서 뭔가 데자뷰를 봤을 테다. 그렇다. 이 다큐멘터리의 핵심 주역들은 <레닌 재장전>의 주역들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레닌 재장전>이라는 단행본을 낳은 2001년의 국제컨퍼런스 <진리의 정치를 향하여: 레닌의 복구>를 이끈 사람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2005년의 국제컨퍼런스 <진리의 정치는 여전히 사유가능한가?>와 <오늘날의 유물론>, 2009년의 국제컨퍼런스 <공산주의라는 이념에 관하여>, 2010년의 국제컨퍼런스 <공산주의의 역량>을 꾸준히 실행해온 사람들이다(이 모든 국제컨퍼런스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이 바로 슬라보예 지젝이다).

 

이미 이 국제컨퍼런스의 성과물들은 꾸준히 단행본으로, 논문으로 출판됐고(되고 있고), 앞으로도 출판될 것이다. 그리고 이들 지식인들을 버소, 리뉴, 데쿠베르, 라파브리크 같은 출판사들이 꾸준히 후원한다. 그리고 다시 이들의 영향을 받은 젊은 연구자들이 <맑스 재장전> 같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기존의 연구성과들에 대해 토론하고, 그 결과물을 다시 앞의 출판사들이 열정적으로 소개해준다.

 

이렇듯 트렌드는 줏어먹는 게 아닐진데, 우리나라의 지식인들이나 출판사들은 뭐하나 모르겠다. 국내의 일부 지식인들(그리고 독자들과 평론가들)은 외국의 ‘강단 좌파’를 비웃는데, 오히려 그게 비웃을 만한 일이다. 그들만큼의 활동이라도 하고 비웃었으면 좋겠다. 제대로 된 강단 좌파가 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국내의 일부 출판사 사장님들이 도서시장 활성화 운운하며 e-book에 꽤 열 올리시는 것 같은데, 뉴미디어의 활용(책과 뉴미디어의 융합)은 <맑스 재장전> 제작처럼 창조적이어야지 인터넷서점 홍보라든가 e-book 컨텐츠 제작 같은 게 아니다. 혹은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시장을 넓히는 것만큼이나 이미 있는 시장의 내실을 다지는 데도 신경을 써주시면 좋겠다. 가령 젊은 연구자들을 발굴하거나 후원하지도 않으면서 필자가 없다 운운하는 건 무척이나 꼴사나운 짓이지 않은가? (끝)

 

※ 참고로 바커는 프랑스의 철학자 알랭 바디우 밑에서 수학한 젊은 연구자이다. 바커의 첫 번째 저서인 <알랭 바디우: 비판적 입문>(Alain Badiou: A Critical Introduction, London: Pluto Press, 2002)이 국역되어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한번 읽어보시길 바란다. 개인적으로 영미권에서 나온 가장 신뢰할 만한 바디우 입문서는 캐나다 출신의 피터 홀워드가 쓴 <바디우: 진리에의 종속>(Badiou: A Subject to Truth,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03)이라고 생각하지만 바커의 바디우 입문서도 꽤 잘 쓰여진 입문서이다.

 

  

출처 : 비평고원(Critical Plateaux)
글쓴이 : 르페브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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