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치』,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예프스끼, 김근식옮김, 열린책들 2012

https://dia-na.tistory.com 2013. 7. 28. 22:20

 

 

초등학교 6학년때였다.

독서에 대한 의욕은 왕성하였으나 주변에 책이 없어 늘 책에 목말라 있던 시절,

어디선가 굴러온 『죄와 벌』

'라스코리니코프는~' 으로 시작되는 책의 서두는 6학년이 읽기엔 긴 이름부터가 압박이었다.

지적 허영심이 충만했고  그닥 볼거리가 없었던 시절인지라 어렵게 어렵게 그 책을 다 읽어냈던 기억이 있다.

그 뒤로, 도스토예프스키라면 아예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 긴 이름에, 알 수 없는 서설에 질려서였을 것이다.

 

그런 그를 다시 만났다.

백화현샘의 『도란 도란 책모임』강연 이후, 고전을 읽자는 독토샘들의 의견을 좇아 읽게 된 것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장장 2주간에 걸쳐 독하게 읽어냈지만, 허겁지겁 읽어 낸 통에 찬찬히 정리를 해 보아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의 다른 책들도 궁금해졌다.

그러다가, 지식채널에 도스토예프스키에 관한 것도 찾아냈다.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이다.

 

 

                                 

 

 

 

유난히 창백한 안색, 움푹 꺼진 보높은 광대뼈, 벗어진 이마

잔인한 천재, 대분호, 영혼의 선견자, 예언자등등의 수식어와 함께 알려진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이다.

 

 

그는 평생을 돈에 쪼들렸고

선인세를 받고 헐값에 원고를 넘기며

늘 원고 독촉에 시달리며 글을 써야만했다.

하지만, 그가 궁핍한 이유는 다른데 있었다.

학창시절, 아버지에게 돈을 청구하는 그의 편지구절을 보면

어느 정도 허영심이 가득찬 생활을 했던 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게다가 치명적인 그의 취미는 도박.

술과 도박과 마약 중 셋 중 하나에라도 중독된 남자와는

그 어떤 상황에서든 이혼하라고 주장하던 反여성운동주의자(『아내여 항복하라』란 책에서)의 말이 떠오른다.

 

 

 

 

늘 돈에 쪼들려 궁핍한 생활을 해야했던 그는 그을 쓸 때도 자기가 가장 잘 아는 이야기를 내세웠다.

바로 가난한 사람들이다.

그 자체가 가난한 사람들에 속해 있었기에 가난한 사람들의 심리 묘사마저 탁월함을 엿볼 수 있는 구절.

 

 

그런 그였기에

 

" 도스토예프스키는 내가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었던 단 한사람의 심리학자였다." - 프리드르히 니체

 

" 그는 러시아가 낳은 악마적인 천재였다. " - 막심 고리끼

 

"도스토예프스키를 낳았다는 것만으로도 러시아 민족의 존재는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 " - 니꼴라이 베르자예프

(그런 우리나라는????)

 

" 도스토예프스키는 어느 과학자보다도 위대한 가우스보다도 많은 것을 내게 주었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많은 예술가와 심지어 과학자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백치.ppt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다가 등장인물이 너무 헷갈려

등장인물 관계도를 파워포인트로 만들었는데,

『백치』역시 등장인물 관계도가 필요하다.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에서 이 책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요약해 놓았기에 그것을 옮겨본다.

 

미쉬킨 공작은 간질병을 앓고 있는 일종의 '백치'로 고결하고 순수하고 어린아이처럼 순진한 인물이다.

어느날 스위스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 그는 나사따샤라는 여인을 알게 되면서

추악하고 복잡한 인간관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나스따샤는 부유한 중년 사내 또츠키의 정부인데 또츠키는 예빤친의 딸과 결혼하기 위해

그녀를 떨쳐내고 싶어하고, 예빤친의 비서인 가냐는 지참금때문에 그녀와 결혼하고 싶어하고,

상인가문의 자제인 로고진은 지옥 같은 정욕때문에 그녀와 결혼하고 싶어한다.

미쉬킨 공작은 그녀의 영혼을 구원하려고 하지만, 그녀 자신이 치욕스러운 과거에 대한 수치심과 복수심 때문에

구원과 파멸의 갈림길에서 오락가락 한다.

 

여기에 예반친의 딸 아글라야가 미쉬킨 공작을 사랑하면서 복잡한 사각 관계의 양상을 띠게 되지만,

결국 아무런 결말도 없이 등장인물 모두가 파멸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가장 아름답고 순결한 인간 미쉬킨은 이 타락한 세상을 구원하고 변화시키려 하지만

그이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간다.

정념의 화신 로고진은 나스따샤를 살해한 후 정신착란증에 걸려 시베리아로 유배되고

미쉬킨 공작은 완벽한 백치가 되어 스위스로 돌아가며

아글라야는 폴란드 사기꾼과 결혼한다.

 

 

 

 

늘 돈에 허덕였다고 해서 도스토예프스키가 빈곤한 가정에서 출생한 것은 아니였다.

그의 아버지는 리투아니아 성직자의 아들로 신학교를 졸업한 뒤 성직의 꿈을 접고

모스크바로 돌아와 황실 의학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그는 1812년 전쟁 때 군의관으로 복무한 것을 계기로 전후에는 마린스키 빈민구제병원에 자리를 잡았다.

그의 아버지는 정규진료시간 외에도 개인 진료를 해서 돈을 모으기 시작했고

비좁은 병원 관사에 지내면서 돈을 저축한 결과 툴라지방에 토지를 구입했다.

부모가 내핍의 생활을 몸에 밴 사람들인데도

도스토예프스키는 그 절약정신을 이어받지 못했다.

아버지는 표도르와 그의 형 미하일을 공병학교에 입학시키지만

표도르(도스토예프스키)는 안정적인 미래를 내치고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공병학교 시절 그는 아버지에게 숱한 지불청구서같은 편지를 보내는데,

그가 돈이 필요했던 이유는

'과시용 소비'행태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는 공병학교를 졸업한 직후 연봉 5000루블을 받던 시절에

월세 1200루불의 호화 아파트에 세들어 살았는데,

그 이유는 집주인이 예술을 사랑하는 너무 괜찮은 사람이어서 그랬다는 것이다.

극도의 낭비와 극도의 결핍 사이를 오가며 살아온 청년은 돈에 대한 사색이 더 깊었을 것이다.

그는 돈을 단순히 부와 가난이 아닌 심리적 고찰의 대상으로 파악한다.

가난의 경제학, 가난의 사회학이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던 시기에

도스토예프스키는 가난의 심리학을 가지고 위풍둥당하게 문단에 등장했다.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석영중, 예담,2012. 에서 발췌 -

위 책에서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7편을 분석하고 있다.

『백치』에서는 최상류층은 아니지만 귀족인 예빤친 공작의 거실이 자주 등장하는데

도스토예프스키가 상류층의 거주 생활을 잘 알고 있지 못한 까닭에

공작의 거실에 대한 묘사가 디테일면에서 많이 떨어진다고 한다.

말하자면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세밀한 관찰자였을지 모르지만

상류층에 관한 한 경험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고보니 문득 1994년엔가 히트를 쳤던 드라마『서울의 달』 작가가 떠오른다.

김운경 작가.

 

그가 예전에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은 평범한 서민들의 삶은 잘 그릴 수 있는데,

상류층의 생활을 잘 묘사할 수 없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런 면에서 김수현 작가가 부럽다고 했던가.

종편에서 여전히 필력을 자랑하는 김수현의 재능은

글쓰기 말고도 타고난 가정 환경도 한 몫을 하는 것이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그것을 관찰하기는 쉬워도

아래에서(서민)에서 위를 관찰하기란 그들의 진입장벽이 두터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드라마 작가로 치자면 김운경은 도스토예프스키에

김수현은 톨스토이라고나 할까.(살아온 배경이 그렇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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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백치』로 돌아가면,

 

검색을 하다보니

연극『백치』에서

백치 미쉬킨은 예수에

나스따샤는 막달라 마리아에,

로고진은 유다의 은유라고 하는데, 어느정도 맞는 말일 것 같다.

 

백치는 이재에 물들지 않는 순수한 동심을 가진 어른이다.

놀랍도록 순수한 사람들을 보면 스스로가 바늘에 찔린 듯이 아파오고

그러다가 그와 친숙해지길 바라는데 미쉬킨은 그런 존재인듯 싶다.

 

어떤 것에도 놀라워하지 않는다는 건 뛰어난 지혜를 지닌 자들의 특성이라는 말도 있습니다만, 내가 보기엔 그만큼 바보 같다는 소리와도 일맥 상통하는 듯 싶어요....” 이뽈리뜨

이볼리뜨의 이 말이 '백치'로 칭해지는 미쉬킨 공작의 '백치'의 의미를 잘 묘사하지 않았나 싶다.

 

원래 비열한 인간들이 정직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법입니다. 이런 사실을 몰랐나요? 그런데 나는....... 내가 어떤 면에서 비열한 인간인지 솔직하게 말해 주시겠습니까? 저들 모두가 그 여자를 빗대어서 나를 비열한 인간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뭡니까? 그러다 보니 나도 그들처럼 나 자신을 비열한 인간이라 부르고 있어요. 비열하다고 하니까 그렇게 비열하게 된 모양입니다.” 가브릴라가 공작에게

 

온갖 비굴함과 치사함을 감수하면서 부를 향해 악착같이 달려드는 가브릴라 마저도

공작을 받아들이게 된다.

 

철도가 아니오. 그것은 전반적인 경향에서 초래된 거요. 철도는 다만 그러한 경향의 예술적 표현인 지도로서만 역할할 따름이오. 말하자면 인류의 행복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서두르고 소란 떨고 두드려 대고 난리를 친단 말입니다 .<인간 사회가 지나치게 소란스럽고 산업적으로 변해가지만, 정신적 평안은 적어지고 있다가>고 어느 은둔 사상가(B.C뻬체린)가 불평을 했어요. <하지만 배고픈 인간에게 빵을 날라다 주는 수레바퀴 소리가 정신적 평온보다 더 낫지 않을까? (A.N.게르쩬)>라고 세상을 떠돌아 다니는 또다른 사상가가 의기양양하게 대꾸를 하고서는 뿌듯한 마음으로 거기를 떠났지요. , 파렴치한 레베제프는 인간에게 빵을 실어다 주는 수레를 믿지 않아요! 왜냐하면 도덕적 근본이 없이 전인류에게 빵을 실어다주는 수레는 그 빵의 혜택을 받는 극소수 인간들의 향락을 위해 대부분의 인류를 도외시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한 일은 이미 있어 왔지요....”

수레가 대부분의 인간을 도외시할 수 있단 말인가요?”

그런 일은 이미 있었어요.”

인류의 친구인 맬서스가 이미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정신적 근본이 튼튼하지 못한 인류의 친구는 인류를 잡아먹는 식인종입니다. 그런 인간들의 허영심은 말할 필요조차 없어요. 무수하기 짝이 없는 그런 인류의 친구들 중 누군가의 허영심을 모욕해 보세요. 그는 좀스런 복수심으로 세계 방방곡곡을 불태워 버리려고 할 거예요. ”

                               책의 말미에는

백치에 나타난 인물 간의 갈등 양상 이라는 에드워드 바숄렉의 논문이 실려있다. 그가 분석한 레베제프의 인물은 이렇다.

 

레베제프

타락의 표상인 레베제프가 그 사회에 대한 심판을 선언하게끔 되어 있다. 그는 주정뱅이에다가 호색한이다. 그는 신의가 없고, 교활하며, 지나치게 자기 본위적이다. 그는 또한 몰염치할 정도로 위선적이다.

레베제프는 살아 있는 진리이다. 우스꽝스런 솔직함으로 그가 사는 사회의 모든 타락을 상징하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지켜야 할 고상함이나 체면을 다 떨쳐 버리고 행동함으로써 가려져 있지 않은 그들 영혼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거울이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 나오는 광대처럼 도스또예프스끼의 위대한 광대이다.

 

 

이 책의 배경은 1860년대로

러시아가 이제 막 자본주의에 발을 디딘 때인데

『백치』에 나오는 가브릴라나 레베제프는 전형적인 자본주의적 인간 유형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배신을 일삼고 자존심 따위는 안중에도 없던 그가

당시의 사회상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다.

"도덕적 근본이 없이 전인류에게 빵을 실어다주는 수레는

그 빵의 혜택을 받는 극소수 인간들의 향락을 위해 대부분의 인류를 도외시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라는 대목이 그렇다.

 모든 과학기술 혹은 문명이 발달이

모든 인류에게 혜택을 주는 것은 아니니까.

 

바흐무또프, 다른 개성에 대한 한 개성의 교류가 교류를 받은 자의 운명에 어떤 의미를 띠고 있는지 알겠는가......? 거기에는 완전한 삶이 있고, 우리에게 숨겨진 무수한 가지들이 싹트고 있는 걸세. 가장 뛰어나고 예리한 장기 선수라도 오로지 몇 수 앞밖에 읽을 수 없는 법일세. 어떤 형식이든 간에 자네의 씨앗을 뿌리고, 자네의 <자선과 선행>을 베푼다는 것은 자네 개성의 일부를 타인에게 내주는 동시에 타인 개성의 일부를 받아들이는 걸세. 자네는 상호 교류를 하고 있는 거라네. 타인에게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여 준다면 자네에게 가는 보상은 가장 예기치 않았던 발견이 될 걸세. 그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네. 결국 반드시 자네는 과학을 바라보듯이 자네의 행위를 바라보게 될 걸세. 그것은 자네의 모든 삶을 휘어잡아 삶 전체를 가득 채울 수 있게 되는 거지. 다른 한편으로 자네의 모든 사상, 자네가 던진 모든 씨앗들, 그것들은 자네에게서 이미 잊혀졌을지 모르지만, 아마도 형체를 얻게 되어 쑥쑥 자라나게 될 거라네. 자네에게서 베풂을 받은 자는 제3자에게 그대로 <베풂>을 전해주기 때문이라네. 자네가 미래에 인간의 운명을 해결하는 데에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어떻게 아는가?”  이뽈리뜨

 

폐병을 앓고 있는 이뽈리뜨가 사람들앞에서 유서와도 같은 <해명>을 낭독할 때 나왔던 말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8년간의 유배생활 동안

유일하게 허용된 책 <성경>을 탐독했다고 하는데,

한때는 무신론자였던 그가 8년간 성경을 탐독하면서 어느정도 신의 존재를 받아들이게 되었나보다.

그래서인지 자주 인용되는 성경구절과 함께

미쉬킨 공작같은 성스런 성품을 지닌 인물이 등장한다.

미쉬킨 공작은『카라마조프카의 형제들』의 알료샤를 연상시킨다.

물론 알료샤가 더 멋지게 그려지긴 하지만...

아마도 그는

철의 시대에 자본에 굴복한 여러 군상들을 보며

이볼리뜨와 같은 얘기를 설파하고 싶지 않았을까?

돈이 다가 아니다.

베풀며 살아라.

 

덧.

그의 작품이 소설가뿐만 아니라 드라마 작가에게도 영향을 주었음이 분명하다.

 

그런 얼굴을 보니 언젠가 아글라야에게 말했듯이 <심장이 영원히 뚫려 버린 것>같이 느껴졌다.

 

'심장을 뚫어버린 사랑'은 드라마  『다모』 의 카피였다.

카피라이터가 이 작품을 읽었을까나???

 

겸손은 가장 무서운 힘이라는 말이 있다.

- 유재석이 생각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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